< 2022, 『가온문학』 신인상 수상작 > 中
수렵채취의 기억
김원상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스웨덴의 박물학자 린네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생물 분류학으로 인간은 어디에 속할까요 시험에 나온다고 잊지 않으려고 외운 종, 속, 과, 문, 강, 문, 계, 쉬는 시간이면 언제나 책상에 고꾸라지던 아이, 가방 속에 책은 없고 이상한 공구들만 넣고 다니던 놈, 교실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며 어디론가 날아가 고래 사냥을 꿈꾸던 녀석,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챙겨 복도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쏜살같이 내달리던 친구, 그들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 사람종, 뭐 이런 것이 기억나는 것은 왜일까요
린네에게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얻은 인류는 땅따먹기 놀이도 구슬치기 놀이도 즐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모에렉투스도 네안데르탈인도 크로마뇽인도 하지 않은 놀이를 사피엔스를 계급장처럼 하나 더 달은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땅 부자가 최고이고 번쩍이는 구슬을 전리품인 양 장식품으로 자랑하며 자치기를 흉내 내어 쇠막대를 휘두른 채 필드가 어쩌고 라운딩이 저쩌고 합니다
버찌를 따고 진달래 먹던 채취의 시간이 지나고 수렵의 시대가 도달했습니다 화장실에 은폐하여 사냥감을 물색하고 어둠을 빙자하여 대로를 습격한 뒤 아랫도리를 확인하고 끝내는 진지 탈환 돌격 앞으로를 저지릅니다 수렵에 익숙지 못하여 채취의 습관에 머무는 이들을 상대로 새로운 강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주먹과 자본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합니다 빌딩 숲은 위험합니다 골목이 미로처럼 구부러진 동네로 숨어들어 수렵의 돌칼을 갈고 채취의 소쿠리를 엮어야 합니다
오늘도 어깨에 소쿠리를 메고 돌칼을 손에 쥔 동형이종의 수렵채취인들이 지하철로 몰려갑니다
-전문-
* 심사위원: 나호열 강기옥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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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문학』 2022-여름(32)호 <신인상 수상작 3편> 中
* 김원상/ 1958년 서울 출생, 국제대(現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도봉시벗>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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