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살기
정진규(1939-2017, 78세)
진종일 문단속을 하고 살다가 허실수로 진종일 문을 열고 살아보았습니다 내 의심이 얼마 간 남아 있던 날은 그만큼 당하였으며 모든 의심을 털어버린 날은 전혀 당하지 않았습니다 내 뜨락의 풀잎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평화로웠습니다.
-전문-
▶원석原石과 물꼬 트기의 시/ - 유한幽閒한 삶과 수유리水踰里(발췌) _김미연/ 시인 · 문학평론가
정진규 시인은 경기도 안성출생(1939-2017, 78세)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월간 『현대시학』 주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시집에는 『마른 수수깡의 평화』 등 16권(육필시집 포함)과 시선집 『정진규 시선집』(2007, 책 만드는 집)이 있다. 그는 전봉건 사후 『현대시학』 주간으로서 우리나라 시단의 산 증인 중 한 사람이 되었고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단의 역량 있는 필력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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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어느 날이지 싶다. 허실수로 대문을 열어놓고 지냈던 날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있다. '허실수'이긴 했지만 모처럼 집 마당과 울타리의 주변을 풀어놓았다는 이 의외의 유한함에 독자도 한껏 유한의 땅따먹기 같은 시간을 보낸 셈이 되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도시 변두리라 하더라도 부지불식 불신의 영토에 편입시키고 스스로 안마당의 평화를 봉쇄로서 지키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시인은 이 사실을 허실수이지만 하루의 평화를 현실사회에 개방해버렸다. 그러고 난 뒤 아무 일(도둑 따위)도 없었다는 것과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개방의식이 있을 때와 없었다는 것이 그 역으로 드러났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개방의식이 없었을 때는 아무 일이 없었고, 어정쩡한 상태에서 개방했을 때는 소수의 손실이 있었다는 것 아닌가. 이런 정도로는 우리가 불철주야 경계와 불신의 늪으로 견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시인의 이 해석이 매우 개방적이다. (p. 시 111/ 론 98 *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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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가을(91)호 <현대 시인 열전- 25/ 정진규 편> 에서
* 정진규(1939 ~2017, 78세)/ 경기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 『무작정』등 17권, 여러 권의 시선집이 있음
* 김미연/ 2010년『시문학』으로 시,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 ,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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