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이라는 말
이은봉
혈혈단신이라는 말
마른 나뭇가지 위
덜렁 앉아 있는 까마귀 같다
마음속 가득가득 들린다
까마귀 울음소리
마른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은
혈혈단신이라는 말···
보아주는 이 없어도
까마귀 한 마리
끝내 서방정토, 만들고 있다.
-전문-
▶ 통합적 상상력과 '사랑'의 영원성(발췌) _김성조/ 시인, 문학평론가
'혈혈단신'은 현실적 시간 속에서 체감하는 자아인식의 한 형식이다. '까마귀, 까마귀 울음소리'는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 이미지이다. "혈혈단신이라는 말"에서 '말'은 내부적/ 외부적 배경을 두루 함유한다. 이른바 스스로 인식하는 내적자아의 한 측면과, 외부적 시선을 통해 체감되어 오는 외적갈등의 한 기류가 그것이다. "마른 나뭇가지 위 덜렁 앉아 있는 까마귀"는 그 구체적 심리적 기저가 된다. 이러한 심리적 기저는 "마음속 가득가득 들린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통해 보다 극대회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갈등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마른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은/ 혈혈단신이라는 말···"에서 그러한 행위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혈혈단신이라는 말···"에서의 말줄임표는 이러한 열망과 행위의지가 쉽게 실행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까마귀' 이미지에 표상된 삭막한 외로움의 심연과 고립의 정서는 고스란히 시적행간에 남게 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연의 "보아주는 이 없어도/ 까마귀 한 마리/ 끝내 서방정토, 만들고 있다"는 큰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혈혈단신', "까마귀 울음소리"에서 '서방정토'까지의 거리는 적지 않은 자기정화의 시간을 담보한다. 여기서 '서방정토'는 '혈혈단신'의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는 극복기제이면서 또한 정신적 자유의 한 경지를 표방하는 공간 이미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p. 시 152/ 론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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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23-가을(91)호 <신작소시집/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이은봉/ 1984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생활』『걸어다니는 별』등, 평론집『시와 깨달음의 형식』『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등
* 김성조/ 1993년 『자유문학』으로 시 부문 & 2013년 『미네르바』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영웅을 기다리며』 외 2권, 시선집『흔적』, 학술저서『부재와 존재의 시학-김종삼의 시간과 공간』『한국 근현대 장시사長詩史의 변전과 위상』, 평론집『詩의 시간 시작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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