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介孃 - 국토 6
조태일(1941-1999, 58세)
논개양은 내 첫사랑
논개양을 만나러 뛰어들었다.
초겨울 이른 새벽
촉석로 밑 모래밭에다
윗도리, 아랫도리, 내의 다 벗어던지고
내 첫사랑 논개양을 만나러
南江에 뛰어들었다.
논개양은 탈 없이 열렬했다.
내가 입 맞춘 금가락지로 두 손을 엮어
倭將을 부둥켜 안은 채
싸움도 끝나지 않고 숨결도 가빴다.
잘한다, 잘한다, 南江이 쪼개지도록 외치며
논개양의 혼 속을 헤엄쳐 다니는데,
물고기란 놈이 내 발가벗은 몸을 사알짝 건드렸다.
아마 그만 나가달라는 논개양의 전갈인가부다.
내 초겨울 감기를 걱정했나부다.
첫사랑 논개양을 그렇게 만나고
뛰어나왔다.
논개양을 간신히 만나고 뛰어나왔다.
-전문-
▶일관하여 이룩한 저항과 국토정신의 현현懸懸/ - 혼과 육으로 쓴 시인의 국토시(발췌) _김미연/ 시인 · 문학평론가
조태일 시인(1941-1999, 58세)은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으로 등단하고, 시집 『국토』 등 여러 권을 내었고, 계간 『시인』을 창간(1969)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을 맡았고,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이 이력에서 우선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에 방점이 찍힌다. 저항시인이라는 것, 민중적 연대의식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
시 「論介孃 국토 6」 전문이다. 초겨울 어느 날 시인은 진주 축제에 가서 흐르는 남강에 뛰어 들어가 순국 기생 논개를 만나고자 했다. 임진왜란의 2차 계사년 진주성전투에서 7만 민관군이 순국하자 진주기생 논개는 남강 의암에 올라가 춤을 추며 왜장을 유인하여 껴안고 물속에 뛰어들었다. 그 순국의 애국적 거사에 대해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기록이 전해져 오는데 조태일 시인은 기회를 갖게 되자 논개의 당시 결행처럼 옷을 벗어던진 것으로 보인다. 조태일다운 호기를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시인이 379년 전에 죽은 애국한 여인을 '처녀 논개'로 호출하여 '논개양'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시인의 천진성과 진정성에 감복하게 된다. 시인은 이로써 선배 시인 만해(한용운)나 수주(변영로)나 파성(설창수)의 대열에 섰다. 아니면 더 오랜 세월로 되돌아가 청년 정약용의 '나라 근심'에 합류한 것이다. 초겨울, 강물에 아무나 뛰어들지 않는다. 그는 뛰어들었다. 그는 감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논개가 걱정해 주는 것으로 시를 썼다. 아무나 그런 시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시인은 논개가 아직도 왜장을 껴안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흘러갔지만 시인의 의식은 '역사의식' 속에 있다. '지나감'은 없어진 현재가 아니라 현현되는 현재라는 것이다. 왜장도 있고 망언도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다는 것, 그 의식은 역사를 뛰어넘어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 (p. 시 135-136/ 론 122 * 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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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가을(91)호 <현대 시인 열전- 26/ 조태일 편> 에서
* 조태일(1941~1999, 58세)/ 전남 곡성 태안사 출생, 1964년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토』등 여러 권,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남김.
* 김미연/ 2010년『시문학』으로 시,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 ,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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