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 조선 선조 때의 기생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듸
자시는 창窓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쇼셔
-전문(吳氏藏傳寫本)
▶불멸不滅이 된 여인, 홍랑의 절양가折楊歌 「묏버들 갈해 것거」(전문) _서대선/ 시인
전쟁이 난다면 당신은 무엇부터 챙길 것인가? 가족, 패물, 땅과 집문서, 그리고 현금과 생존 배낭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생 홍랑洪娘의 선택은 달랐다. 선조 1592년(선조 25년)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 44세)의 글과 글씨를 지키고자 그의 글을 모아 함경도로 향한 후, 모습을 감추고 왜란을 피해 그의 문학적 자료들을 지켰다. 홍랑은 왜란이 끝난 후 해주최씨 문중을 찾아가 최경창의 유작들을 고스란히 건네어 준 후, 다시 최경창의 묘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죽 최경창은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45세),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09, 70세)과 함께 당나라 이태백, 두보, 왕유에 비유되는 조선 중기 삼당三唐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최경창이 함경도 병마절도사 보좌관으로 부임했을 때, 고을 원님의 초청 술자리에서 최경창의 시를 읊던 기생 홍랑을 만났다. 2년 순환 보직을 마치고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는 최경창을 따라 나섰던 홍랑은 함경도 경계선인 함관령에서 애틋했던 마음을 담은 "묏버들 갈해 것거"라는 송별 시조를 지어 최경창 앞에서 읊었다. 관물 취급을 받던 천한 관기였던 홍랑은 양계(兩界, 평안도와 함경도)의 백성들은 그 경계를 넘어 도성으로 올 수 없다는 경계령 때문에 안타깝고 절절한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별하는 연인에게 버들가지를 꺾어주는 '절양折楊'의 풍속은 중국에서도 이별을 뜻하며 재회를 기원하는 증표이기도 했다.
최경창이 서울에서 심하게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홍랑은 주저 없이 길을 떠났다. 양계법 때문에 함경도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금지령도 기생 홍랑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칠일 밤낮을 걸어 한양에 들어온 홍랑은 병든 최경창의 병수발을 극진히 들었다. 1576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이 북방의 관기를 도성에 들인 것을 문제 삼아 파직시켰다. 그 후 다시 복직된 최경창은 변방의 한직으로 밀려 근무하다 1583년(선조 16년), 45세의 나이로 객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기생 홍랑은 경기도 파주에 묻혔던 최경창의 묘를 찾아가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자처했다. 홍랑은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 3대 기생으로 이름난 명기였기에, 뭇 사내들의 관심과 희롱을 피하여 자신의 얼굴을 칼로 그어 상처를 내고는 자신의 몸에 흙을 바르고 씻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커다란 숯덩어리를 통째로 삼키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벙어리가 되어 최경창의 묘소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흠모하고 사랑했던 예술가의 병든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계법의 금지령도 어겼던 여인.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에도 쩔쩔매었던 임진왜란의 전란 속에서도, 이미 지상에 없는 최경창의 문학적 산물인 글과 글씨의 자료들을 모아 굳건하게 지켰던 여인. 천한 관기의 몸이었으나 시문에 능했던 여인. 조선 3대 명기 중 하나였던 홍랑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해주었던 한 사람의 예술가와 영혼으로 맺어진 소울메이트(Soulmate)가 되어 불멸을 꿈꾸며 온몸으로 살아냈던 조선의 여인이었다. 사랑의 불멸을 보여준 여인, 기생의 신분이었으나 해주최씨 문중에서 인정받아 사랑하고 흠모했던 최경창의 곁에 묻혀 불명不滅의 자리에 오른 황랑이 건네는 "묏버들"을 나의 문학정신의 창가에 심어두고 그녀를 만난다. ▩ (p. 8)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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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3. 9월(263)호 <내 마음의 시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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