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소양강/ 함명춘

검지 정숙자 2023. 10. 22. 02:14

 

    소양강

 

     함명춘

 

 

  강이 흐른다, 바다로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안기기 위하여

 

  안겨서 깊이 박힌 못을 뽑아주고

  지워지지 않는 못 자국을 씻겨주기 위하여

 

  강줄기는 그 기나긴 여정의 발자국이다

 

  한 번이라도 가슴에 금 간 적 있었던 사람들이

  염소 무리처럼 강가에 모여든다

 

  두 귀를 지나 가슴속까지 범람하는

  강물을 안고, 어떤 이는 침묵 속에 자신을 놓아두거나

  강둑을 따라 정처 없이 걸으며

 

  진정으로 아파 본 자는 안다

  구름을 헤집고 나온 사소한 한 줄기 빛도

  시들은 꽃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며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인

  강이 흐른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 누군가의 가슴에 안기지 못한

  강물만이 바다로 흘러간다

    -전문(p.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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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3-여름(114)호 <이 계절의 신작시 1> 에서 

 * 함명춘/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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