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미학
강순
아무것에나 이별 인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빠진 머리카락이나 잘못 쓴 편지지와 헤어질 때
안녕, 안녕, 이라고 말하며
쓸모없이 쓸쓸한 등을 아무 때나 내보인다
사라지거나 남겨지는 것들은 절벽 같은 침묵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차가운 밤이 모래처럼 차곡차곡 쌓여간다
연락 없는 무심한 이들에게
안녕, 안녕, 혼자 중얼거리며
안녕을 접어서 어둠에 던지는 일은
어제의 낭만을 남몰래 해촉하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을 받아들여
생채기 있는 이별에도 익숙해질 때
망각의 망토를 허공에 날리며
검은 구름을 뜯어 맛보는
웃는 마녀로 변신해야지
미문美文만 골라잡는 긴 손톱을 들어
버린 안녕을 주워 입맞춤하며
안녕, 안녕, 쾌활한 노래를 반복해야지
흙먼지 이는 계절이 오기 전에
이별 폭풍을 막을 수 있는
작고 단단한 창문 하나 만들어야지
-전문(p. 198-199)
------------------
* 『아토포스』 2023-여름(2)호 <신작시> 에서
* 강순/ 199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크로노그래프』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양강/ 함명춘 (0) | 2023.10.22 |
---|---|
냉담/ 길상호 (0) | 2023.10.19 |
박남희_우수시 깊이 읽기(부분)/ 밀과 보리 : 유계영 (0) | 2023.10.19 |
박남희_우수시 깊이 읽기(부분)/ 추적 : 류미야 (0) | 2023.10.19 |
박남희_우수시 깊이 읽기(부분)/ 숨의 방식 : 문성해 (0) | 2023.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