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냉담/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3. 10. 19. 20:33

 

    냉담

 

     길상호

 

 

  달이 얼어붙어 금이 간 뒤로

  어떤 연락도 닿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더 두꺼워져

  어제의 내게도 성에가 피고

 

  한 방울 한 방울 깊어지는 웅덩이

 

  볼륨을 줄여 밤새

  쓸쓸한 음악을 틀어 놓았습니다

 

  귀신과 키스를 나누고 나서

  하루 정도 더 버틸 용기를 얻었습니다

 

  창문도 커튼도 모두 입을 닫은 

  이 방의 고요를 사랑합니다

 

  멀리멀리 퍼져가는 웅덩이

 

  기습 한파가 닥칠 예정이니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놓으랍니다

 

  혀 위에 굴리던 딱딱한 노래는

  다 녹아 사라지기 직전입니다

 

  똑똑독 또독, 끝도 없이 이어지는 노크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까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전문(p. 374-375) / 반년간 『상상인』(2023. 01)

   

  --------------------------

   * 『아토포스』 2023-여름(2)호 < 2023 아토포스가 선정한 이 계절의 추천시 > 에서 

   * 길상호/ 2001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외 4권, 에세이집『겨울 가고 나면 따뜻한 고양이』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