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몸을 태운 사랑_데미안 신부님께/ 김창순(로라)

검지 정숙자 2023. 10. 17. 02:36

 

    몸을 태운 사랑

      - 데미안 신부님께

 

     김창순(로라)

 

 

  끓는 태양 아래

  팽개쳐진 목숨들이 몸부림 치던 곳.

  곯아 썩어 문드러진 육신들을, 당신은

  커다란 가슴으로 끌어 안았습니다.

 

  영혼도 얼굴 따라 다 뭉그러져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땅을 치며 저주하던 모진 목숨들.

  성난 파도는 끊임없이 울음을 토해내고

  깎아지른 절벽은 몸서리를 쳤습니다.

 

  버려진 섬 몰로카이, 출구 없는 칼라우파파

  마르고 후끈거리는 벌판에, 1873년

  서른 세살로 부르심을 받은 당신은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지으며

  예수의 삶을 사셨습니다.

 

  매일 매일 한 두개의 관을 짜고

  한 두개의 구덩이를 파서

  지지리도 힘들었던 그들의 몸을

  주님의 품 안으로 보내셨던 당신.

 

  어느새 당신의 몸에도 진물이 흐르고

  마흔 여섯 살 당신의 몸은,

  당신의 몸을 태운 사랑으로 

  영혼이 되살아난 당신의 사람들

  문둥이들의 가슴에 묻히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당신이 지으신 필로메아 성당

  피눈물의 기도로 엎디셨던 그 자리에

  당신의 숨결 지금도 그대로 살아, 여기

  무릎을 꿇은 작은 가슴이 아프게 저려옵니다.

 

  뭉그러진 당신의 손을 잡아 봅니다.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을 더듬어 봅니다.

  무척이도 외로웠을 당신의 영혼을 바라 봅니다.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당신을 향한

  사랑의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1997)

                -전문(p. 86-87) 

 

  ◭ 작자는 1990년대말에 호놀루루에 살다가 지금은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스에 살고 있다. 이 시는 빅 아일랜드의 알라이 한인묘지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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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하와이 시심詩心 100』에서/ 2005. 1. 5. <관악>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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