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
정채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사자가 2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20만 가족이
누구는 아들을 잃었고
누구는 아버지를 잃었고
누구는 남편을 잃었고
누구는 연인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체 불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을 잃은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어느 쪽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인기 회복을 위해?
협상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오늘은 또 몇백 명이 전사할까?
저녁 뉴스에 자막으로 흘러갈 뿐인 그 숫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싸늘한 어깨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뜬 눈을 감겨주지도 못한 채
세상 모든 곳에서 영영 지워야 하는
웃으면 덧니가 보이던 무용수 아들아
세 살배기 딸을 안고 놓지 못하던 아빠야
자원입대 5일 전 결혼한 남편아
잠들 때마다 가슴속 연인을 쓰다듬던 당신아
대체 불가
20만 개의 우주가 사라진 것이다
살아남은 20만, 100만, 수억의 우주가 눈물로 꽃을 피운다 해도
다시는 여기서 피워낼 수 없는
-전문(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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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3-7월(6)호 <시-움> 에서
* 정채원/ 1996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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