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대체 불가/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3. 10. 11. 02:20

 

    대체 불가

 

    정채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사자가 2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20만 가족이

  누구는 아들을 잃었고

  누구는 아버지를 잃었고

  누구는 남편을 잃었고

  누구는 연인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체 불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을 잃은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어느 쪽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인기 회복을 위해?

 

  협상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오늘은 또 몇백 명이 전사할까?

  저녁 뉴스에 자막으로 흘러갈 뿐인 그 숫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싸늘한 어깨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

  뜬 눈을 감겨주지도 못한 채

  세상 모든 곳에서 영영 지워야 하는

 

  웃으면 덧니가 보이던 무용수 아들아

  세 살배기 딸을 안고 놓지 못하던 아빠야

  자원입대 5일 전 결혼한 남편아

  잠들 때마다 가슴속 연인을 쓰다듬던 당신아

 

  대체 불가

 

  20만 개의 우주가 사라진 것이다

  살아남은 20만, 100만, 수억의 우주가 눈물로 꽃을 피운다 해도

  다시는 여기서 피워낼 수 없는

     -전문(p. 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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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3-7월(6)호 <시-움> 에서

  * 정채원/ 1996『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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