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1인분의 세계/ 박재우

검지 정숙자 2023. 10. 11. 01:09

 

    1인분의 세계

 

     박재우

 

 

  나는 직립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걸을 수 있는 발이 없었다

  스스로 걸을 수 없는 나는 버려지고 던져졌다

  이 천형은 버림받은 어미에게서 왔다

  어미도 그의 어미에게서 버려진

  우리의 기나긴 고아의 시간들, 그리하여

  밤은 오직 짐승의 이빨처럼 어둠의 뼈를 물고

  생의 하중을 버티는 것이다

  몸의 절반이 이미 무덤 속에 있으니

  살아있는 것인가, 죽어있는 것인가

  왜 삶은 이토록 비현실적인가

  바람이 불어와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피할 수 없는 몸은 감옥이었다

  나는 일생을 걸고 나를 탈옥해야 했다

  창살 밖으로 수많은 팔을 뻗어

  햇살의 부스러기를 긁어모으며 탄화를 꿈꿨다

  팔을 뻗은 자리가 옹이가 되는 줄도 모르고

  함부로 바람의 멱살을 흔들었다

  번번이 실패했고

  팔이 부러지는 아픔의 층계를 밟고 오르면

  하나씩 돋는 구부러진 손가락들

  그런데 왜 하필 몸의 벼랑에 꽃은 피는가

  오, 신이시여 제발 나를 베어버리세요

  일생의 통성기도를 묵살해버린

  저 추악하고 욕설 같은 꽃이 왜

  나의 이름이란 말인가

     -전문(p.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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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3-7월(6)호 <시-움> 에서

   * 박재우(본명: 박용우)/ 2023년 『상상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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