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달빛국회/ 김순진

검지 정숙자 2023. 10. 11. 01:26

 

    달빛국회

 

     김순진

 

 

  사당역을 지나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달을 숭배하는 당수가 만든 지극히 사적인 당의 당원이다

  우리 당 당수는 달집을 태우거나 횃불을 들고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으면서 맹목적 달의 숭배를 이념으로 삼는다

  나는 슈퍼문 블루문 레드문 따위의 슬로건을 믿지 않으며

  다만 무드에 표를 의존하는 아마추어 당수를 신봉한다

  일체의 당비와 의무 없이 달을 연모하는 것만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당원의 자격

  달이 반쪽이 되거나 파산지경에 이를지라도 

  결코 청문회를 열거나 해산되지 않는 달빛국회

  나는 1인 독재 이데올로기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즐기며

  구름의 아주 나쁜 정책이나 백주의 달빛 누출 경위에 관해 궐기한다

  달빛국회는 늘 만월이 최선의 뉴딜이라 우기지만

  국민들은 오랜 세월 우려먹은 빛바랜 정책에 피로감을 느낀다

  달의 조도를 올리려면 초승달에게 초승달 앞에 초대형 돋보기 우산을 씌우는 둥

  체감 있는 정책을 내놓으라고 그림자들이 연좌하고 누웠다

  이번 회기의 이슈는 그림자 보호법의 파기와 부활의 찬반을 묻는 

  일명 그믐달 정책의 통과를 놓고 한판 격돌을 예고한다  

 

  야간 국회라 명명되는 밤 회기에만 개원하는 달빛국회

  나는 달빛정책의 일관성을 호도한 채

  지극회 사적인 감정, 무드정책에만 사활을 건다

     -전문(p.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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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3-7월(6)호 <시-움> 에서

  * 김순진/ 1984년 시집『광대 이야기』로 작품활동, 시집『더듬이 주식회사』외 3권, 시론집『즐기며 받아쓰는 시창작법』외 2권, 저서 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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