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유엔총회는 2010년 깨끗한 식수와···인간의 기본권으로 선언/ 강경호

검지 정숙자 2023. 8. 30. 14:55

 

 

    유엔총회는 2010년 깨끗한 식수와 화장실을 사용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선언

 

     강경호

 

 

  『시와사람』을 27년간 발간하면서, 문학관리자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자책감에 우울해 한 적이 많았다. 그것은 광주민중항쟁 이후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소비하는 기형적인 광주 · 전남의 문학을 문학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때로는 문학의 한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로컬리즘만이 우리 고향 사람들의 삶과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역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규명하는 일이 나의 또다른 책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p. 6 / '책을 펴내며' 中)

 

  굿은 대표적인 민속신앙이다. 그러므로 마을마다 무당이 있고 당집이 있었다. 굿은 자연물과 같은 대상을 위하고 대상을 섬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여 화해에 이르고자 하는 의식이다. 나 혼자 잘 살겠다는 목적으로 굿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나, 신과 인간, 자연과 사회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생적 세계관 속에서 굿이 출현하였고 행해졌다.

  굿에서는 나무나 바위, 물과 산, 하늘과 땅 모두가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 이를테면 산신굿, 영등굿, 샘굿, 지신굿, 당굿, 용왕굿 등 굿의 현장을 알 수 있는 다양한 굿이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용왕굿을 실시했다. 배를 띄워 고기잡이를 나아가는 어부들이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바다에 제사 지내는 의식이었다. 심청전에서 인당수 물길의 노여움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청이를 바쳤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을 섬기는 의식을 굿이라는 형식으로 펼쳤던 것이다. (p. 19)

 

  기우제는 산의 상봉에 단을 만들고 봉화를 올리며 희생과 많은 제물을 바치고 무당이 기도하도록 하였다. 1960년대 3년 대가뭄 때 전라남도 함평군의 우리 마을에서도 돼지를 잡고 제물을 준비하여 마을에서 제일 높은 산인 두루봉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는데 땔감에 불을 지펴 하늘에 연기가 오르도록 했다. 기도와 연기가 하늘에 닿아 비가 온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도 탈이 되어 입추 때까지 장마가 계속되면 흉년이 되므로 나라에서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내기도 하였다. (p. 41)

 

  중국 후한 때의 사람 곽박은 "죽는 것은 생기(生氣, 영혼같이 보이지 않는 생명)를 탄 것이다. 생기가 바람에 타면 흩어지고 생기가 물로 경계하면 머문다. 옛사람은 바람을 모아 생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고 물을 가게 하여 생기를 머물게 하였다"고 했다. 여기에서 풍수가 나온 것이다. 그는 또 "풍수의 법은 산속에서 돌아 나오는 물을 얻는 것(득수,得水)이 가장 좋고 바람을 흩어지지 않게 잘 간직하는 것(장풍, 藏風)이 다음이다'라고 한다. 풍수의 기본이 '장풍득수藏風得水'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풍수에서 물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우치고 있다. (p. 41)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명당을 찾아 그곳에 쇠말뚝을 박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중국의 이여송은 우리나라 산맥을 곳곳에서 끊어 인재를 못 나게 했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산마루나 좋은 터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래서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백 개의 쇠말뚝을 뽑기도 하였다.

  풍수설은 자연을 이용하고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터를 잡을 때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골라 바람을 막고 햣볕 드는 양지를 골랐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남향집을 최적으로 삼고 산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마을 앞의 개울물을 이용하여 식수와 농업용으로 이용하고 그곳에서 멱도 감았던 것이다. (p. 50)

 

  옛날 어느 집에 5대가 함께 살았는데, 나이 많은 노인들이 모두 번데기가 되어 물만 먹고 살았다. 6대 손부孫婦가 들어와 그 내력을 알아보니, 집 안에 있는 몇십 년 묵은 구기자나무 밑의 샘물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손부는 번데기로 있는 조상에게 그 샘물이 아닌 다른 물을 먹여 차례로 돌아가시게 하고, 그 샘은 메워버렸다.

  사람은 4대가 함께 살 수 있어도 6대가 같은 시대에 살 수가 없다. 그런데 6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나이가 많은 윗대 어른들이 번데기로 살아가는 일은 집안의 흉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6대 손부가 들어와 어른들을 번데기로 만든 구기자 밑 샘물 대신 다른 샘물을 먹여 모두 세상을 떠나게 하고 그 샘을 메워버린 것은 잘한 일이다.  

  이 설화에서 샘물은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흥미롭다. 이 설화와는 내용이 많이 다르지만, 젊어지는 샘물 설화는 샘물의 특이성을 잘 보여준다. 즉 어떤 샘물을 마시면 젊어진다는 것을 안 노인 한 사람이 젊어지고 싶어서 젊어지는 샘물을 욕심껏 먹어 아예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는 내용이다. 탐욕스러움을 경계하기 위해 꾸며진 이 이갸기에서 샘물은 생명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탐욕을 징벌하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p. 57)

 

  유엔총회는 2010년 깨끗한 식수와 화장실을 사용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선언하면서 그 기준을 제시하였다. 사람은 하루에 1인당 50~100리터의 물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물은 안전하고 깨끗하여 저렴해야 한다. 물 사는 데 드는 비용은 가구 소득의 3%를 넘어서는 안 된다. 물이 나오는 곳이 집에서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집에서 1㎞ 이내에 수원이 있어야 하고 하루 30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물 사용 환경이 이 기준에 못 미치면 질병과 죽음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물은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의 젖줄이 된다. 그런데 2003년 볼리비아의 코차밤바에 아구아스델투나리라는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서 이곳 사람들에게 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물을 사용하려면 돈을 내라는 것인데, 산에서 계곡과 시내를 따라 내려오는 물도 저장했다가 써서는 안 되고 빗물도 모을 수 없게 했다. 자연이 모든 생명체에게 준 물을 국가도 아닌 외국기업이 독점하자 분노한 주민들이 투쟁해 민영화를 무산시키고야 말았다. 물은 특정 세력의 권리가 아니다. 인간과 식물 모두가 살기 위해서 쓸 수 있는 공용의 자산이다. (p. 66)

 

  어머니는 우물물을 길어다 대접에 정화수를 담아 아궁이의 솥단지 위 벽에 긴 못을 두 개 박고 그 위에 올려놓곤 하였다. 때가 되면 또다시 맑은 우물물로 갈았다. 물 자체가 신인 조왕신을 잘 받들면 바라는 일이 잘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정화수는 산해진미 가득 차린 상에 못지않았다. 가난한 집에서는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혼인식을 올렸다. 새해에 정화수를 떠 놓고 풍년을 빌기도 하였다. 우물에는 물을 상징하는 용왕이 사는 까닭에 항상 주위를 깨끗이 하였다. 칠월 칠석에는 우물 청소하고 제사를 올렸다. 출산을 앞둔 남자는 자원해서 청소하기 위해 우물 속으로 내려갔는데, 용왕신이 아들을 점지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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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호_평론집 『서정의 양식과 흔들리는 풍경에서/ 2022. 9. 30. <시와사> 펴냄

  * 강경호/ 1992년『문학세계』로 평론 부문 & 1997년『현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문학평론집『휴머니즘 구현의 미학』『서정의 양식과 흔들리는 풍경』『문학과 미술의 만남』『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외, 미술평론집『영혼과 형식』, 연구서『최석두 시 연구』, 시집『언제나 그리운 메아리』『알타미라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함부로 성호를 긋다』『휘파람을 부는 개』『잘못든 새가 길을 낸다』, 소리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내 마음의 소리』, 기행 에세이집『다시, 화순에 가고 싶다』『역사와 생명의 고을, 무안』『화순누정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