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언어비평을 제안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들(발췌)
김언
생성언어로 문학을 하고 예술을 한다는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되는 언어를 기반으로 문학과 예술을 한다는 말이며, 이 과정에서 인간이 아무리 많은 개입을 하더라도 언어를 생성하는 작업 자체는 인공지능이 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는 언어를 인공지능이 담당해서 생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생성문학이 아니다. 생성언어는 개념상 기계에 의해 생성된 언어이고 기계에 의해 생성되어야 하는 언어다. Chat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 같은 글쓰기의 도구 수준을 넘어 글쓰기의 주체로서, 그리하여 인간 저자를 위협하거나 인간 저자와 협업하는 저자로서 내세워질 수 있는 이유도 엄청난 속도로 문장을 생성하는 능력 자체에 있다. 이전 같으면 인간 저자가 도맡아서 했던 문장의 생산을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가 떠맡으면서 골치 아파지는 지점은 저자의 개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계를 통한 생성문학이 활발해질수록 인간의 문학적 체험 자체가 달라지는 사태를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생성언어를 통한 문학적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해 문학이 생성되는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창작과정에서 문학의 결과물만 놓고서 희열을 느끼지 않는다. 작품이라는 문학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공통스럽게 인내하고 번민했던 모든 과정을 포함하여 희열을 느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작가로서 감내해야 했던 지난한 시간이 있었기에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쓰디쓴 과정이 없으면 달콤한 결실도 느낄 수 없다는 논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문장이 생성되는 순간에도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주문이 입력되면 거의 실시간으로 주문에 상응하는 문장을 뽑아낸다. 문학이 되는 문장도, 논문이 되는 문장도, 광고가 되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이든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인공지능이 거의 삭제하다시피 줄여놓은 시간은 달리 보면 인간이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숙고하는 시간에 해당한다. 시적 문장, 문학적 문장, 예술적 문장을 얻기 위해 한정 없이 들여야 했던 시간도 인공지능의 작업으로 넘어오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이 된다. 지나간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스킵skip해버리는 그 시간이 이전의 인간 창작자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하고 거칠 수밖에 없는 문학적 체험의 시간이었다. 예술적 체험의 시간이기도 한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나오는 결과물 앞에서 과연 어떤 문학적/ 예술적 희열을 경험할 수 있을까? 문장이 익어가는 시간이면서 문학이 숙성되는 그 시간을 건너뛴 채 온전히 문학을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을까? 창작하는 과정에서 건너뛴 그 시간은 감상하는 입장에서도 문학적 체험을 하는 과정에서 공백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창작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삭제한 것은 단순히 문장 생성에 소요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래도록 인간이 누려왔던 문학적 체험의 시간일 것이다. (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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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6월(402)호 <기획성/ 생성언어비평을 제안하다 2> 에서
* 김언/ 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숨 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모두가 움직인다』『한 문장』『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백지에게』, 시론집『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평론집『폭력과 매력의 글쓰기를 넘어』, 산문집 『누구나 가슴에 문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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