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휴머니즘은 중세 유럽의 신神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강나루
본래 휴머니즘은 중세 유럽의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그리스·로마의 언어·문학·예술의 연구를 통하여 보편적인 인간 교양을 획득함으로써 인간의 존엄 확립을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이른바 인본주의人本主義이다. 그러므로 휴머니즘은 근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출현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기계문명과 물질 중심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가 가속됨으로써 휴머니즘이 위협받기에 이른다.
강경호 시의 기저에는 인본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휴머니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것이 그의 시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강경호의 시는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인한 인간 이외의 자연이 소외되고 훼손되어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경호의 시적 지향은 인간의 존엄성 회복과 더불어 자연과의 공생·공존의 태도를 보임으로써 진정한 휴머니즘이 구현될 수 있다는 시적 신념을 발현하고 있다. (p. 19)
신神 중심의 중세 봉건사회에서 인간의 존재보다 신을 경배하는 태도에 반발하연서 르네상스(문예부흥) 시대가 열렸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이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의미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라는 말로 불리고,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연구함으로써 인간다움을 높이고 새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人間像을 실현하려는 새로운 교육이념이 대두하였다. 그래서 '이보다 인간다운'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오르(humanior)에서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제3 인문주의'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전 연구자들의 새로운 문제의식이 낳은 신인문주의 운동으로, 진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동과 경험에 의해 생기는 것이며 실제적 유용성에 의해 규정된다. 세계의 설명원리說明原理는 신이나 절대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신이 세계를 행동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원리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p. 33)
동양철학은 태극의 원점을 우주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음양과 오행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유기론적 생명현상을 개관하고 있다. 서양이 하느님이라는 유일신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동양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 소통한다는 관점에서 창조적인 우주관, 자연관, 인간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학적인 세계관은 현대사회의 큰 이슈로 등장한 현대 생태학(생명학)의 전범적인 모델로서 새로운 인문학적인 패러다임을 생성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양을 제공하였다. (p. 37)
근대 이후 인간은 자연을 정복 대상, 또는 물질적 가치로 여겨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러면서 자연과 인간의 불화, 인간과 인간의 불화를 초래했다. 이것은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또는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자연을 순수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오늘날 자본 문명으로 피폐해진 인간의 모습을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화를 해소할 수 있다. (p. 106)
최근 한국시는 지나친 난삽과 굴절, 그리고 기묘한 불구적 상징의 구사, 별 의미 없는 장황한 묘사 등으로 긴장과 탄력을 잃고 서정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서정시의 새로운 계승과 복원을 시도하는 긍정적인 시인들도 많다. 그 가운데 강경호 시인은 앞에서 보았듯이 전통 서정의 표현방식을 바탕으로 자아 확인의 치열한 정신으로 자본주의의 그늘을 폭 넓고 진지하게 묘파하며 인간의 존재 방식 탐구와 생의 형식을 모색하며, 서정시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와 함께 청렴하고 결백한 정신을 담아내는 염결성廉潔性이 투사된 시가 무척 드물다. (p. 132)
강경호 시인은 1958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지만,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였다. 1987년 첫 시집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를 펴낸 이후 1992년에 『문학세계』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다. 1997년에 『현대시학』 신인발굴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여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1993), 『함부로 성호를 긋다』(2004), 『휘파람을 부는 개』(2009),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2016) 등 5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물론 그가 그동안 시 전문지 『시와사람』을 창간하여 27년 동안 편집자로서의 역할 때문에 시보다 문학평론에 치중하였지만, 그러나 그가 펴낸 시집들은 밀도 있는 언어로, 특히 '자연'을 시적 소재로 많이 차용하여 다양한 시 세계를 펼쳐왔다.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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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나루_강경호 시 연구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에서/ 2022. 9. 30. <시와사람> 펴냄
* 강나루/ 1989년 서울 출생, 2020년『아동문학세상』으로 동시 부문 & 2020년『에세이스트』로 수필 부문 & 2020년 『시와사람』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감자가 눈을 뜰 때』, 에세이집『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 동시집『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 연구서『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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