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노트

앉은뱅이책상/ 박수빈

검지 정숙자 2023. 7. 22. 01:59

 

    앉은뱅이책상

 

     박수빈

 

 

  내 곁에 앉은뱅이책상이 있다. 나이테가 물살로 흐르며 옹이는 눈동자처럼 박혀 나를 응시하는 것 같다. 나는 낮은 자세로 차분해진다. 밥상에 수저를 놓듯이 필기구를 놓고 책을 펼치면 어느덧 진솔한 상이 차려진다. 밥심처럼 세상살이의 저변을 받치는 힘을 여기에서 얻는다.

  책을 번갈아 읽기도 하고 소제목을 훑다가 어느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물거나 뒷부분에 집중하기도 한다. 보물 같은 문장을 만날 때 마음에 새기며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지인이 "왜? 아직도?" 할 때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눈으로 보이는 너머를 읽고 이면에 다가가려면 정진해야 한다. 진실은 찾고자 노력하는 이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 페이지를 매진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용기와 의지로 앞서간 이들을 존경한다. 글을 읽고 쓰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행간과 여백이다. 좋은 글은 행간이 넓고 언어로 치장하지 않으며 사유를 확장한다. 시간이 흐른 후에 아차! 했던 느낌표들이 떠오른다. 가령 향기가 짙어야 꽃이라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혜롭게 행간을 알고 여백을 두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숱한 바람이 스치고 보니 피는 꽃만 꽃이 아니다. 꽃이 진 뒤에 열매를 맺으므로 지는 꽃도 과정이라는 이치를 뒤늦게 깨닫는다.

  앉은뱅이책상의 서랍에 담긴 건 어둠만이 아니다. 공기와 같아서 어둠과 더불어 기지개를 켜며 어둠 속에 잠든다. 서랍은 침잠하면서 비밀을 간직해 왔다. 가슴에 서랍을 품고 어루만지느라 은밀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었듯이 내일의 내 길을 생각한다. 빛바랜 편지들이 웅크려 있는 서랍을 다시 밀어 넣어본다.

  복잡한 심사로부터 맑아지는 방법이 앉은뱅이책상과 함께하기이다. 겸허히 주변부터 돌보라고 바닥과 가깝고 이름도 정겹게 앉은뱅이책상인가 보다. 오래 아끼면서 함께하고 싶은 친구다. (p. 13)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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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3. 7월(261)호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