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이구한/ 시인 · 문학평론가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시인의 의식 흐름과 세계를 향한 인식의 깊이를 읽는 일이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본 시선을 따라가야 한다. 시인이 사물을 감각으로 보느냐, 의식으로 보느냐, 아니면 무의식으로 보느냐, 또한 대상의 실체를 보느냐, 존재를 보느냐, 아니면 무의식으로 보느냐,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보이는 사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착란의 순간에 시간의식이 중첩되기도 한다. (p. 4)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은 몸으로 지각한 세계이며, 정신으로 의식하기 전에 몸의 감각으로 지각한 세계이다. 따라서 이를 '몸의 현상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데카르트나 헤겔은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하고 인식의 주체를 정신으로 설정하였다. 메를로 퐁티 입장에서 육체는 지각의 주체이지만 정신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의식이나 경험보다 육체가 먼저 사물을 감각하고 지각함으로 육체를 중요시하여 지각 현상학을 개진하였다. (p. 57)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 70세)는 물질의 겹주름과 영혼의 주름에 대해 언급한다. 라이프니츠의 주름에 대해 들뢰즈는 바로크 건축물의 특징을 예로 삼아 설명한다. 바로크는 주름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바로크집을 알레고리로 하여 "이 주름은 위층에서는 영혼이 내면의 주름들 안에서 현실화하고 아래층에서는 물질이 '주름에 또 주름' 하는 식으로 항상 외부에 태어나게 하는 겹주름 안에서 실행한다."3) 고 언급한다. 물질은 외부로부터 태어나는 외적주름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유기체는 여러 부분을 접고 펼칠 수 있는 내적 주름을 형성하게 된다.
중첩되는 시간의식은 묘한 감정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이 겹친다. 하나를 접으면 다른 하나를 펼치는 차이를 지시하는 시간의 오랜 주름은 화자가 대상을 접할 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때 시간은 장소를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p. 232)
3) (질 들뢰즈,『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이찬웅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59쪽)
시를 표현자의 입장에서 정의한 릴케는 "시는 체험이다."라 말했고, 워즈워드는 "히는 힘찬 정서적 유로"라고 했다. 코울리지는 "시는 상상적 표현이다."라고 말하면서 "상상력은 변용과 착생을 주도하는 정신능력"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주관적인 관점에서 언명한 정의들은 시의 정서적인 면을 강조한 시선들이다. 시는 곧 서정이나 체험일 수도 있고 상상일 수도 있으며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시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의한 내용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는 운율적 언어에 의한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언급했으며 아널드는 "시는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라고 단언했다. 엘리엇은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도피이다."라고 표방했으며 셸리는 "시는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시는 자신의 체험이나 정서적인 서사일 수도 있지만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서사일 수도 있고 기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결국 시란 개인의 정서뿐 아니라 사회나 세계에 대한 인식을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생의 본질을 파악하고 진실을 밝히는 표현방식인 것이다. (p. 287)
사물세계에서 대상을 바라본 경우, 실재론적인 관점이나 관념론적인 관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실재론적인 관점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상태로서 즉자卽自 존재에 대해 사실적인 지각이 발생한 것이다. 반면에 관념론적인 관점이란 대상을 의식적으로 바라본 상태로서 자기 안에 대상적 존재를 간직하며 대자對自 존재에 대해 의미론적으로 접근한 경우이다. (p. 293)
시를 창작하는 데 소재나 주제만큼 중요한 것은 플롯이다.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 C. E. 62세)는, 일찍이 『시학』에서, "시인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는데 "그가 모방하는 것은 행동인 이상, 시인은 운율보다도 플롯의 창작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플롯의 3요소로 급전, 발견, 파토스를 언급하는데 급전은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고, 발견은 무지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급전과 발견은 이성에 속한 사항이지만 파토스는 죽음, 부상 등과 같이 파괴 또는 고통을 초래하는 감정과 행동에 속한다. (p. 310)
# 올해 우리 지역에 또 하나의 향토문학지인 『민족 문예와 사상』이 발간되었는데, 이는 이전의 『대한문학』을 쇄신한 혁신호이다. 도세道勢가 꽤 약한데도 우리 향리의 문학 예술적 열정은 더욱 활발해지는 것 같아 기대가 사뭇 적지 않다. 더구나, 이 잡지가 주로 운문보다는 산문적 내용에 더 맣은 관심을 두는 일도 반갑거니와, 수록된 작품들에 소정의 고료를 지불하는 것 자체도 더 반가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p.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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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구한 문학평론집 『착란의 순간과 중첩된 시간의식』에서/ 2023. 7. 1. <상상인> 펴냄
* 이구한 (본명, 이광소(시인)/ 1942년 전북 전주 출생,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 2017년『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당선, 시집『약속의 땅, 서울』『모래시계』『개와 늑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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