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완행버스
임길택(1952-1997, 45세)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도
내가 손을 흔들어도
가던 길 스르르 멈추어 선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 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이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전문-
▶완행버스 같은 동심의 시인, 임길택(발췌) _이준관(시인, 아동문학가)
임길택은 내가 꼭 한 반 만나고 싶었던 시인이었다. 그러나 1997년 45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 결국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나에게 그리운 이름이 되어버린 임길택은 강원도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에서 15년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이야기를 동시와 동화로 썼다. 그가 남긴 동시집은 『할아버지 요강』, 『탄광마을 아이들』, 『산골 아이』, , 동화집으로 『산골 마을 아이들』, 『느릅골 아이들』 등이 있다.
*
임길택은 완행버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누구나 어디서나 손을 들면 태워주는 완행버스, 길 가기 힘든 사람 모두 태우고 언덕길을 함께 오르고 싶은 완행버스가 되고 싶어 있다. 탄광마을과 산골마을을 찾아다니며 완행버스처럼 힘든 길 가는 아이들을 태우고 가던 그는 1997년 멈추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완행버스가 사라졌다. 완행버스와 같은 사람들도 사라졌다. 저마다 경쟁적으로 달리는 무한경쟁의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완행버스 같은 사람이 더욱 그리워진다.
*
임길택의 동시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끄러운 우리 모습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과연 지금의 우리 사회는 누구나 어디서나 손만 들면 태워주고 함께 힘든 언덕길을 올라가게 하는 완행버스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완행버스는커녕 함께 버스도 타고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우리 사회, 갈등으로 달라지고 다투고 으르렁거리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임길택의 동시들을 다시 읽어본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힘든 사람을 함께 태우고 가려는 마음, 불행보다는 희망을 먼저 보려는 마음, 지금은 그런 동심의 마음이 절절하게 필요한 때이다. (p.시 199/ 론 194-195 · 200 · 202)
* 블로그 註 : 책(p. 185)에 '임길택' 시인의 진영眞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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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3-봄(15)호 <이준관의 시담시담>에서
* 이준관/ 시인 · 아동문학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1974년 『심상』으로 시 부문 등단. 동시집 『쥐눈이콩은 기죽지 않아』『흥얼흥얼 흥부자』외 다수, 시집『가을 떡갈나무 숲』『부엌의 불빛』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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