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승하_분단에서 이산으로,···(발췌)/ 열차를 기다려서 : 김규동

검지 정숙자 2023. 4. 10. 01:38

 

    열차를 기다려서

 

    김규동(1923-2011, 88세)

 

 

  비 오는 어두움이 가슴에 아파

  그럴 때마다 허망한 거리를 가며

  당신이 모습을 찾습니다.

 

  탄환에 쫓긴 사슴 모양

  생활의 막다른 골목에서

  불현듯이 그대 손길을 더듬어 봅니다.

 

  북에 갔던 항공기의 편대들이

  푸른 공간 위에 폭음을 굴릴 적마다

  그대 모습을 어루만집니다.

 

  다섯 해의 세월이 지나갔어도

  꿈에 뵙는 당신의 그림자는

  항시 환히 밝아······

 

  육십오 세의 흰머리 날리시며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큰 우레 산하를 진동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인민의 눈동자

  별빛처럼 타는 밤 ······

 

  삶을 위한 싸움 속에

  자유를 위한 신음 속에

  우리 모두  대열져 섰거늘!

 

  이윽고 목메인 평화의 아침이 열리면

  그 무슨 주저도 없이 달려갈

  아들들 열차를 기다려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전문-

 

  ▶ 분단에서 이산으로, 이산에서 통일로(발췌)_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1923년 함북 경성에서 태어난 김규동은 연변의대에서 수학하고 평양종합대학을 다니다 월남한 시인이다. 함북 온성에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 1948년에 월남했다. 시 본문에 명시된 "다섯 해의 세월"로 미루어보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쓴 시 같다. 북으로 항공기 편대가 날아갈 때마다 시인은 애간장이 타서 어머니를 외쳐 불러본다. 부모 형제, 특히 어머니를 북에 둔 채 월남한 시인으로서 전쟁이 한창일 때 느끼는 이 아픔이야말로 창자가 끊어지는斷腸 아픔이었을 것이다.

            *

  이 시를 보면, 어머니가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란 생각을 어느 한순간도 지운 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제목에는 북의 어머니가 아들이 타고 달려갈 열차를 기다리면서 제발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하늘을 까맣게 덮으며 북으로 날아가는 전투기 편대를 보면서 시인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한국전쟁 중 북한 전역에 투하된 폭탄의 양은 어마어마했고 북한의 주요 도시와 산업 시설은 거의 다 파괴되었다. 민간인 피해도 엄청났다. (김규동 시인이 문학 강연을 하면서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 얘기를 하다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김규동은 2011년에 타계할 때까지 분단 극복의 의지를 담은 시를 여러 편 썼다. (p. 시 101-102/ 론 100-101 * 103)

 

    -----------------------

    『시마詩魔』 2022-여름(12)호 <시詩 읽는 계절>에서 

   * 이승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뼈아픈 별을 찾아서』『생애를 낭송하다』『예수 · 폭력』등, 산문집『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등, 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