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현승

검지 정숙자 2023. 5. 11. 02:20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현승

 

 

  옥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서 생각한다. 영원은 창밖 하늘 끝 멀리 있지 않고 번지점프대의 낭떠러지처럼 발끝 바로 앞에 있다. 뛰어내리면 바로 도착한다. 그래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지. 영원이란 무엇인가? 로드킬 당한 고라니가 달려오는 트럭의 헤드라이트에서 본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득 멈춰 뒷사람들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린 아주머니가 주머니에서 찾던 교통카드 같은 것?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에는 어떤 정지의 이미지가 있다. 급격하게 정지하는 열차 바퀴의 마찰음이 있다. 떨어지는 단풍잎이 팔랑 몸을 뒤집을 때 나던 빛의 신음 같은 것이, 몸이 없어서 시도 때도 없이 재생되는 망자의 음성 같은 것이, 삶이 끊긴 계단처럼 눈앞에 버티고 있을 때 나갈 수도 멈출 수도 없이 밀리고 있을 때 불쑥 들이닥치는 무엇이 있다. 운동력을 급격히 잃을 때의 관성과 쏠림이 있다. 수술 후 마취 깰 때 이 악물고 참아보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던 한 시간 같았던 십 분처럼, 혹은 십 분처럼 흘려보낸 하루. 영원에는 표정이 없다.

   -전문(p.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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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 역대수상자 작품_에서/ 2021. 10. 15. <도서출판 경남> 펴냄

  * 이현승(2016년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2002『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생활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