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태
이경교
지상의 모든 무게들이 수평을 잃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났다
저 꽃들은 스스로 제 안의 빛을 견디지 못하여
그 光度를 밖으로 떼밀어 내려는 것
야금야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빛의 적층을
이루던,
빛도 쌓이면 스스로 퇴화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도대체 누가 그 붉은 암호를 해독했을까
이웃한 잔가지 한번 몸을 떨 때마다
일제히 안쪽의 문을 두드려 보며
더운 열꽃처럼 스스로 제 체온을 덜어내려는
꽃들의 이마 위엔 얼음주머니가 얹혀있다
체온의 눈금이 떨어질 때마다 연분홍 살 속에 꽂혀
있던
눈빛들은 다시 컴컴한 안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몸을 흔들어 수평을 허무는 꽃들이
어두운 고요 속에 일제히 틀어박힐 때
문을 닫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난다
-전문-
▣ 아주 새로운 봄노래(발췌)_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유사 이래 꽃만큼 뭇 시인의 눈길을 끈 것은 없었다. 꽃에 관한 수많은 시가 있었건만 이경교의 「꽃사태」는 단연 낯설다. 꽃이 피는 이유를 "제 안의 빛을 견디지 못하여/ 그 光度를 밖으로 떼밀어 내려는 " 것으로 본 시인은 이경교가 처음일 것이다. 자연 상관물이며 사물은 늘 그 자리에서 재 모습을 지키고 있지만 그것을 새롭게 보고서 달리 이야기할 수있는 사람은 시인밖에 없다. 범인은 아 봄이 옸구나, 봄이 오니 꽃이 피는구나, 보기 좋게 피더니 금방 지네, 하고 이야기하지만 시인은 사물의 속뜻, 그 내면의 진리를 탐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개화와 낙화의 과정을 빛의 충만과 상실로, 발산과 침잠으로 환원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p. 시 218-217/ 론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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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교_시창작강의 『푸르른 정원』에서/ 2012. 2. 20. <미래교육 기획> 펴냄
* 이경교/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응 평전』『꽃이 피는 이유』『달의 뼈』『수상하다, 모퉁이』『모래의 시』, 저서『한국현대시 정신사』『북한 문학강의』『즐거운 식사』, 수상록『향기로운 결림』『화가와 시인』『낯선 느낌들』, 역서『은주발에 담은 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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