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 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전문-
▣ 건강한 상상력, 치유의 상상력(발췌)_ 이경교/ 시인,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
시인의 상상력은 바로 여기 촉각으로 감각되는 조개의 외형, 혹은 그 근육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조개에 대한 해체와 재해석으로 완결되는 외형이다. 그 순간 무의미하던 조개, 단지 하나의 먹이에 불과하던 조개가 전혀 새로운 감수성을 회복한다.
그것은 조개라고 하는 자연대상에 대한 인위적 조작이며, 중층적 이미지 부여다. 그리하여 개조개는 뜻밖에도 선적禪的 상상력과 배려심, 존재론적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최초의 궁리', '가장 오래 하는 궁리'와 '부처'의 상관성은 얼마나 적절한 상상인가. 그러나 그 발상이 조개에서 연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맨발'로 수렴되는 이미지들 부처가 암시하는 깨끗한 허무, 육체를 잊은 자리에서 획득하게 되는 정신적 각성 은 물론, 인간의 필연적 소외와 궁핍을 연상한 사실은 주목된다. 그리하여 시의 의미 맥락은 그 소외와 궁핍이 사회적 갈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직시하고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무게, 그 실존적 물음으로까지 확장되는 문제의식이기도하다.
사실 시적 언어의 존재론적 가치야말로 근대적 각성의 기본틀이다. 이것은 자연대상을 인간의 본질과 동일시할 때 가능해진다. 자연대상이 인간의 문제로 전환될 때, 그 대상은 해체와 조작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바로 여기서 창조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p. 시 96-97/ 론 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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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교_시창작강의 『푸르른 정원』에서/ 2012. 2. 20. <미래교육 기획> 펴냄
* 이경교/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응 평전』『꽃이 피는 이유』『달의 뼈』『수상하다, 모퉁이』『모래의 시』, 저서『한국현대시 정신사』『북한 문학강의』『즐거운 식사』, 수상록『향기로운 결림』『화가와 시인』『낯선 느낌들』, 역서『은주발에 담은 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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