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김수영(1921-1968, 47세)
어둠 속에서도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전문/ 『김수영 전집 1: 시』, 민음사, 2018. 185쪽
◈ '긍지의 날', 자존의 빛과 그늘 (後) 왕가위 영화와 시 읽기의 즐거움(부분)
우리는 왕가위의 영화 <동사서독; 리덕스>의 "홍칠"이란 인물을 김수영 시 「긍지의 날」과 겹쳐 읽으면서, 그를 "긍지"의 주체이자 니체의 운명애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호명했다. 또한 『주역』의 일부를 구성하는 산택손 괘와 풍뢰익 괘에 대한 정이천 주석의 "순환"의 의미를 살피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사상사적 맥락 전반을 가로지르는 극력極力의 역동적 상호 작용, 곧 역동적 평형으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하여 김수영과 왕가위가 구체적 시공간의 거리를 뛰어넘어 상호 접맥될 수밖에는 예술적 감응의 궤적들을 자유로운 크로스오버 차원에서 조명하려 했다.
···(略)···
아마도 "사랑"이란 이러한 희망과 용기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자리에서 빚어지는 공감의 역량이자 감응의 공동체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랑"이란 자기 자신으로만 되돌아가는 나르시시즘의 얼룩과 그 포획물들을 남김없이 버릴 수 있는 자에게만 도래하는 생의 축복이자 환희일 것이리라. 온화한 거죽으로 뒤덮인 그 모든 자이애와의 허허로운 결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김수영과 왕가위가 공유하는 "사랑"이란 여전히 불가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같은 섬뜩한 균열의 형상들을 통해, "사랑"에 깃들일 수밖에 없을 불가해한 타자성과 더불어 그 구체적인 실천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무수한 난경難境들을 낮은 음색과 겸허한 목소리로 아로새겼던 것처럼. (p. 시 102-103/ 론 100-101···(略)···102)
* 블로그 註: 김수영 시 「긍지의 날」, 이 블로그에서 검색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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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 문화비평집 『신성한 잉여』에서/ 2022. 9. 29. <작가> 펴냄
* 이찬李燦/ 1970년 충북 진천 출생,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한국 현대시론의 담론과 계보학』, 문학평론집『헤르메스의 문장들』『시/몸의 향연』『감응의 빛살』, 2012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 젊은평론가상 수상, 현)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부교수/ 영화와 시와 비평이 더불어 감응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 공간을 모색하고 있으며, 다양한 철학적 사유와 예술 이미지의 횡단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스타일을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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