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1912-1996, 84세)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을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전문-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발표된 것은 1938년이다. 이때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어 사용금지를 비롯한 폭압의 조선 민족 말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조선 땅에서 조선 민족을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하겠다는 왜놈들의 악랄함이 극에 달했던 때다.
1937년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조선에서 인력수탈, 물자수탈 등 폭압의 식민지배가 극악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산골로 가자는 것은 백석식 저항의 도피다.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라는 진술로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식민지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에 지는 것이다. 백석은 결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골로 가자고 한다. 싸워서 이길 수 없기에 산골로 가서 살자는 것이다. 패배한 자의 살아남으려는 도피를 선택한 백석이다.
실제로 백석은 1938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발표하고 1940년 만주로 떠난다. 제국주의 일본 폭압의 식민지배에 소극적 저항인 도피를 실행한 것이다.
이러한 도피는 백석식 저항이다. 제국주의 일본 폭압의 식민지배 노예로 살거나, 친일파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저항이었다. 백석의 민족정신은 흔들림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백석이 해방 전에 쓴 아름다운 시편들에서 민족말살정책으로 왜놈들에게 짓밟혀 영원히 사라져버릴지 모를 조선 민족의 순백하고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증언하듯 역사의 비문으로 남기려 한 의도가 보인다.
백석이 해방 전에 쓴 여러 시편은 조선 민족의 삶의 풍경을 역사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 시 43/ 론 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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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섭 평론서 『한국 현대시 해석』에서 / 2023. 1. 10. <book속길> 펴냄</book속길>
* 김유섭/ 2011년 『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 2014년 『수필미학』으로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 시집『찬란한 봄날』『지구의 살점이 보이는 거리』, 평론서『이상 오감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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