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승하_분단에서 이산으로,···(발췌)/ 한가위 : 구상

검지 정숙자 2023. 4. 9. 15:03

 

    한가위

 

    구상(1919-2004, 85세)

 

 

  어머니

  마지막 하직할 때

  당신의 연세보다도

  이제 불초 제가 나이를 더 먹고

  아버지 돌아가실 무렵보다도

  머리와 수염이 더 세었답니다.

 

  어머니

  신부神父*이 공산당에게 납치된 뒤는

  대녀代女 요안나 집에 의탁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관에나 모셨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산소도 헤아릴 길 없으매

  더더욱 애절탑니다.

 

  어머니

  오늘은 중추 한가위,

  성묘를 간다고 백만 시민이

  서울을 비우고 떠났다는데

  일본서 중공서 성묘단이 왔다는데

  저는 아침에 연미사煉彌撒만을 드리곤

  이렇듯 서재 창가에 멍하니 앉아서

  북으로 가는 구름만 쳐다봅니다.

 

  어머니

  어머니 

    -전문-

 

   * 신부 형 : 나의 친형 구대준具大浚은 가톨릭 신부였음

 

  분단에서 이산으로, 이산에서 통일로(발췌)_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구상은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온 가족이 원산으로 솔가하여 그곳에서 자랐다. 해방을 맞이하여 원산 지역 문인들이 낸 해방기념시집에 실은 시가 문제가 되어 단신 월남하였다. 고향으로 갈 기회를 엿보고 있던 터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부모 형제 그 누구와도 재회하지 못한 채 이산가족의 일원으로 살다 2004년에 눈을 감았다.

            *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가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 부모를 만나고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낸다. 명절 차례 지내기가 지금은 줄어들고 있지만 구상 시인이 이 시를 쓴 70년대에는 일본의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추석이나 구정에 성묘단을 만들어 몇 차례 고국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구상은 북녘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신부였던 형은 배교를 거부해 총살당한 듯하고 어머니는 아마도 아사한 듯하다고 시인 자신이 말한 적이 있었다. 고향에 찾아가 보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머니와 형의 그런 죽음이 이산가족 구상의 마음속에 어떤 슬픔을 주었을까. 잠시 동안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지 짐작이나 했으랴. (p. 시 98-99/ 론 98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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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2-여름(12)호 <시詩 읽는 계절>에서 

   * 이승하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뼈아픈 별을 찾아서』『생애를 낭송하다』『예수 · 폭력』등, 산문집『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등, 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