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김현승 탄생 100주년> 에서
절대고독
김현승(1913-1975, 62세)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눈을 비비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이 체온으로 나는 내게서 끝나는
나의 영원을 외로이 내 가슴에 품어 준다.
그리고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내 손끝에서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내고 만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의 손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나의 시와 함께
-『절대고독』(성문각, 1970) 전문
▶ 고독과 깊이의 시인, 김현승(발췌) _이경수/ 문학평론가
김현승의 네 번째 시집 『절대고독』의 표제시인 이 시는 『세대』 1968년 12월호에 먼저 발표되었다. 초기 시에서부터 '고독'과 '깊이'를 추구하던 시인은 이 시에 이르러 비로소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눈을 비비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깨는 각성의 순간에 비유된다.
시의 주체가 생각하던 영원의 끝을 만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모든 대상에게 구원의 빛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그가 추구하고 도달한 것은 신의 경지가 아니라 시인의 경지이기 때문이겠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도 있는 것이다. 시의 주체는 새로이 느끼는 "따뜻한 체온"에 의미의 무게를 싣는다. "이 체온으로 나는 내게서 끝나는/ 나의 영원을 외로이 내 가슴에 품어" 주겠다는 고백은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내 손끝에서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내"겠다는 시인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p. 시 29-30/ 론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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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半年刊誌 『한국시인』 2023-봄/여름(4)호 <특집_김현승 탄생 100주년>에서
* 이경수/ 문학평론가,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불온한 상상의 축제』『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춤추는 그림자』『다시 읽는 백석 시』『이후의 시』『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백석 시를 읽는 시간』『아직 오지 않은 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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