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시를 읽다/ 김재윤

검지 정숙자 2023. 2. 18. 01:18

 

    시를 읽다

 

    김재윤(1965-2021, 56세)

 

 

  아카시아꽃으로 향을 피우고 제를 올렸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제문을 읽느라

  현기증이 났다

  '유세차'는 있는데 '상향'이 없다니

  그녀가 달려왔다

  내 손에서 제문을 빼앗아

  돼지를 삶고 있는 장작불에 태우고

  내게 입맞춤했다

  나는 검은 관에서 일어나 시를 읽었다

  그녀는 산수유로 내 몸을 씻기고

  새 옷을 입혀 줬다

  칡꽃은 그녀와 나의 봄을 휘감아

  하늘을 지향했고

  나는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움직이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안아달라 했다

  천리향에 취해 얼굴이 불콰한

  나비의 날개가 하늘에 닿고

  대지에 발을 내딛기 위해 겨울을 견딘

  달팽이의 뿔도 하늘에 닿았다

    -전문(p.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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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2-여름(25)호 <poem> 에서

  * 김재윤/ 제주 서귀포 출생, 2020년『열린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제주국제대학교 교수, 세한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제17 · 18 ·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