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허수경(1964-2018, 54세)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갈 집이 없는 나는
모두의 집을 찾아 나섭니다
밤별에는 집이 없어요
구름 무지개 꽃잎에는 우리의
집이 없어요 나는 아버지가 돌아간
집에는 살 수 없는 것
세월이 가슴에 깊은 웅덩이로 엉겨 있듯
당연한 것입니다
전쟁을 겪어 불행한 세대가
전쟁을 겪지 않아 불행한 세대가
세월의 깃을 재우는 일조차 다른 것
그래서 나는 돌아갈 집이 없어요
배고픈 어미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땅을 가로질러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함께 노래를 하고 꿈을 꾸고
아버지 나는 갑니다
모두의 집을 찾아 칼을 들고
눈을 재우며
-전문-
▶타향의 도시 '서울' 욕망이나 단절의 헤테로토피아와 도시 빈민들(발췌) _김지율/ 시인 · 문학평론가
이 시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집과 고향의 부재를 의미한다면 "집이 없어요"라는 반복은 새로운 집과 고향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그가 "모두의 집"을 꿈꾸며 고향과 고국을 떠나는 것은 새로운 고향을 찾으려는 트랜스로컬리티적 사고이다. 또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구별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을 해체하고자 하는 마음의 변화23)를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전쟁을 겪은 불행한 세대와/ 전쟁을 겪지 않은 불행한 세대"간의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고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노래를 하고 꿈" 꿀 수 있는 세상을 찾으려는 새로운 연대를 의미한다.
'고향을 떠나는 일은 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라고 한 허수경은 '고향이 겪어내는 당대성을 같이 경험하지 못하는24)고충을 토로하며 새로운 고향을 찾으러 독일로 건너간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헤테로토피아에서 궁핍한 삶으로밖에 살 수 없었던 타향민이나 도시 빈민과 같은 서발턴들의 삶은 늘 경계 밖으로 내몰리며 불안과 절망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욕망의 도시이자 사랑과 꿈이 단절된 타향이라는 서울은 고정된 것으로부터 떠나가는 방식이자 언제나 새롭게 대입해 들어가야 할 이질혼효적인 장소였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갈 집"은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 새로운 고향의식으로서 시인의 시적 공간이자 장소로의 떠남을 의미한다.
허수경의 서울에서 독일로의 이동은 단순히 공간과 장소만의 이동이 아니라 '몫 없는 자들'의 탈경계적 사유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장소의 이동이나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즉 혼종적이고 유목민적인 서발턴들의 정체성은 현실에 이의 제기를 하며 '고향'이라는 헤테로토피아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움직이는데, 허수경이 서울에서 독일로 건너간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 시 260-261/ 론 261-262)
23) 구르비치(Gurvitch)는 나와 타자 그리고 우리는 대립되는 장소성의 축이 있는데, '나'는 '우리'를 토대로 해야만 가능한 상징과 기호를 매개로 타자와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때문에 그는 '나'와 '타자'와 그리고 '우리'를 서로 분리시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 그 자체를 해체하거나 퐈괴하려는 욕망이라고 보았다. 또한 '우리'가 공유하는 것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렐프, 김덕현 옮김, 『장소와 장소상실』, 논형, 2005, 131쪽)
24) 허수경,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난다, 2018,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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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율 연구서『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에서/ 2022. 11. 24. <국학자료원 새미> 펴냄
* 김지율/ 2009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대담집『침묵』, 詩네마 산문집『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들』, 연구서『한국 현대시의 근대성과 미적 부정성』『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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