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엮은이: 김지영(시인)>
남편의 소천
김지영
2020년 1월 19일 오후 1시 29분 남편이 소천했다. 남편의 나이 99세였다. 한 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지만 살아온 날들이 하루처럼 짧게 느껴졌다. 삼 년을 침대 위에서 살았다. 씻기고 먹이고 보살피면서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내 마음을 오해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내 참 마음을 아실 것이다.
자식과 손주들도 아버지를 한결같이 사랑으로 보살폈다. 증손주가 우리 집에 올 때면 증조할아버지 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요."
"아이고, 내 강아지 고마워요."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말문이 막혀 말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반 년은 콧줄로 연결된 관을 통해 밥을 먹었다. 가래를 뽑는 일도 내가 직접했다. 자식들은 겁을 내는데 나는 겁이 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일주일에 두 번씩 들러 체크해 주었다. 내가 가래 뽑는 것을 보고,
"할머니 대단하세요."
"이까짓 것 암것도 아니지라."
남편의 목에서 가래가 끓으면 숨 쉬는 것이 담박 달랐다. 하루에도 여러 번 가래를 뽑았다. 내 나이가 92세였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막내딸이 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하듯 꼼꼼했다. 얼굴을 씻기고 면도하고 머리카락이 조금만 자라도 손수 잘라 주었다. 남편의 변을 손으로 닦아 내면서도 얼굴 한 번 구기지 않았다.
피부에서 좋은 냄새가 나도록 화장품도 꼼꼼하게 발라 주었다. 아버지가 귀엽다며 수시로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집으로 오는 간호사가 말하길, 환자가 있는 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갈하다고 했다. 막내딸이 없었으면 나 혼자 남편을 보살피지 못했을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딸이다.
막내딸은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네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막내딸이 네팔에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대신 큰딸이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남편과 나의 곁을 지켰다. 오전 10경 간호사가 왔다.
"산소 포화도가 65네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숨이 멎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네요···."
고개를 갸웃하며 가족들을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큰딸이 큰아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큰아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의식은 여느 때랑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먹이려고 소고기를 끓여 체에 걸러 영양죽과 섞었다. 12시 남편의 콧줄로 연결된 관을 통해 점심을 먹였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뒤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얼굴이 살아 있는 것처럼 평온했다. 119로 전화를 걸었고, 경찰들이 왔다. 국과수에서도 사람이 나왔다. 두 시간이 지나 남편의 사망증명서가 발부되었다. 소식을 들은 자식들과 손자, 증손들이 달려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증손이 와서 너무나 서럽게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
남편은 누워 지내던 침대를 벗어나 보훈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외국에 나가 있는 자식들 도착을 기다려 4일장을 했다. 장례식장 입구에 남편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틀어 두고, 글로도 써서 조문객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근조 화환이 도착했다. 그리고 천 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다. 남편은 마지막 세상을 떠나면서 태극기 휘장을 두르고 자식들의 애통한 울음을 뒤로 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발인 날은 날씨가 흐리고 보슬비가 내렸다. 대전 국립묘지에 도착해, 나라에서 해 주는 행사를 치르고 마지막 안식처로 들어가 누웠다. 돌아보니 남편과 만나 74년을 살면서 힘든 날보다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남편과 결혼하고 사는 동안 몸을 쓰는 일이든 마음을 쓰는 일이든 내가 아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발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자식들은 마지막까지 효도했다. 남편이 남긴 모든 것은 큰아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부조금도 내 손에 놓았다. 내가 낳은 자식들이지만 내 마음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이만하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 부부는 잘 산 것 같다. ▩ (p. 28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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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집 『1929년생 오준임 그래도 꽃길이었어요』에서/ 2022. 11. 5 <이지출판> 펴냄
* 구술· 그림 오준임/ 1929년 전남 영암 출생, 시인 김지영의 어머니/ 블로그註: 그림은 책에서 일독 要
* 김지영/ 1999년 한국문학예술총연합회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수필 부문 등단, 2017년 ⟪국민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2017년 시산문 시조 · 한국예술드라마 신인상 수상, 시집『내 안의 길』『태양』『내게 연못을 주세요』, 시산문집『시간의 나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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