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창도 하시나요?
권갑하/ 시조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조를 쓰는 시인으로서 마음에 걸리는 것 중 하나가 '시조'라는 명칭이다. 하위 갈래인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라는 명칭도 마찬가지다. '시조' 명칭을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 함께 쓰고 있는 현실이 초래하는 혼란 때문이다.
시조창 가수 문현의 앨범 제목이 '시조, 도시를 걷다'(2005)이고, 신문기사 제목이 '가객 문현의 시조 독창회'(연합뉴스 2009. 9. 28.)인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시조'라는 명칭을 문학은 물론 음악 장르에서도 함께 쓰고 있다.
'시조시인'이란 명칭은 장르의 특성과 구분을 위해 문단이나 언론에서 편의상 쓰고 있는데, '시조시'란 명칭은 쓰지 않고 있다. 시조라고 하면 옛시조를 떠올리기 때문에 구분 차원에서 현대시조라는 명칭도 논란의 대상이다. 옛시조와 현대시조는 사실상 장르가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대'를 빼고 '시조'라는 명칭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시조와 관련된 명칭은 혼란스럽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반인들이 문학과 음악 장르의 시조를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시조를 공부했던 기성세대들도 시조문학과 시조창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시조'는 혼란스러운 명칭일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문학과 음악 장르의 시조 명칭 공용은 장르의 정체성을 해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각 장르 발전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중 ·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조를 배웠기에 나는 별도의 창작 수업을 받지 않고 시조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등단 후 문단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시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시조라고 하면 사람들은 옛시조를 떠올렸고 일부 문인들마저 "젊은 사람이 왜 시조를 쓰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할아버지도 시조를 하셨다"며 내게 "시조창을 들려 달라"고도 했다.
지난 2021년 4월 문학진흥법 개정으로 문학의 정의에 시조가 독립 장르로 명기되었다. 그동안 시조는 '시' 장르에 포함되어 신춘문예나 문학상 등 각종 공모에서 배제되거나 홀대를 받았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때 번역 소개할 '한국의 책 100권'에 시조 관련 책자가 단 한 권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조가 문학 내에서는 이제 법적으로 독립 장르의 위상을 확보했지만 시야를 넓히면 '시조'라는 명칭을 함께 쓰고 있는 음악 장르와는 관계 설정이 더욱 큰 과제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현재 어디에서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시조는 시가詩歌 문학으로 발전해왔다. 향가에 그 뿌리를 두고 고려 말에 형식이 완성된 시조는 3장 형식으로 길이가 짧아 단가短歌라 불렀다. 시조는 한자 표기에 의존하지 않고 순 우리말로 짓고 부른 시요 노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문학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조선 초 한글이 창제되었지만 언문경시 풍조로 18세기 가사집에 수록될 때까지 시조(단가)는 읊조리거나 전통 가곡 창법의 노래로 구전되었다.
임병양란 이후 나타난 도시화와 신분제 해체, 유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18세기에 우리 음악은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았다. 기존의 창법과는 다른 새로운 곡조의 노래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음악적 수요 속에서 가사집 『청구영언』(1728)이 최초로 엮어졌고, 김천택과 김수장 중심의 가인 단체들이 형성되어 가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조'라는 명칭이 18세기 반 문헌에 처음 등장했다. 1774년 펴낸 신광수의 『석북집』 <관서악부>의 기록이 그 처음이다. '시조'라는 명칭 이전에는 영언, 신번, 가요, 단가, 악장, 가곡 등으로 표기되었다.
그렇다면 '시조'라는 명칭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기존에는 단가를 가곡창법으로 불렀는데, 18세기 들어 음악이 크게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곡조[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의 창법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것을 '시절가' '시절단가' '시절가조'로 부르다가 '시조'라는 명칭으로 정착된 것 같다.
초기에는 기본 창법의 하나였지만, '질러댄다'는 의미의 지름시조창법의 변격으로 생겨나면서 기본이 되는 창법을 '평시조'라 불렀다. '어리중간' 의미의 엇시조 창법과 빠른 속도로 많은 리듬을 촘촘히 엮어가는 '편, 엮음'의 사설시조 창법 등 이후 다양한 변격의 시조 창법이 나타나 대중음악으로 인기리에 연행되었다.
18세기 들어 크게 유행했던 이러한 창 중심의 시조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시와 노래가 분리되는 장르 분화가 일어났다. 노래는 시조창이란 음악 영역으로, 시는 인쇄 활자시대에 맞춰 눈으로 읽는 현대 시문학의 시조로 분화된 것이다.
하지만 시로 분화된 현대 시조의 출발은 순탄치가 않았다. 물밀 듯 밀려든 서양의 근대문화로 서구 우월주의가 만연하고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 정책 등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는 폄훼 왜곡되고 천시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 사이 서구에서 들어온 자유시가 시의 안방을 차지했고 우리 문학의 정수인 시조는 뒷방 신세로 빌려났다. '조선적'인 것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나마 시조가 새로운 기운으로 숨통을 트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이러한 분화와 폄훼의 역사성으로 시조문학은 18세기 인기를 끌었던 시조창 중심에서 제대로 탈화하지 못한 채 현대 시문학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오늘날의 시조 명칭과 개념의 혼란도 이러한 불구의 역사성에 기인한다. 시조창 장르에서 평시조와 엇, 사설시조는 창법으로 구분되지만, 시문학에서 평, 엇, 사설시조는 글자 수 또는 음보와 관련된다. 이렇게 음악과 문학의 시조 명칭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지만 명확하게 재정립되지 않은 채 혼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조 초기에 문단에서는 평시조를 단형시조, 엇시조를 중형시조, 사설시조를 장형시조라 불렀는데, 최근에는 '형' 자를 뺀 단시조, 장시조 명칭을 주로 쓰고 있다. 현대 시조문학에서 엇시조는 사실상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이제 시조가 법상 독립 장르로 거듭난 만큼 하위 갈래의 명칭도 현대 시문학적 특성에 맞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조'라는 명칭의 뿌리는 음악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문학에서 시조는 시적 의미로 수용되고 있다. 문단에서 '시조시'란 명칭을 쓰지 않는 것도 우리 시가문학사에서 시조라는 명칭이 지닌 시적인 성격을 고려한 결과이다.
하지만 '시조'라는 명칭에 시적 의미가 표면화되지 않는 점은 현대시로의 발전에 걸림돌이 됨은 분명한 사실이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명칭의 의미가 불분명하고 정체성이 뚜렷하지 못할 경우 생명력 유지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시조라는 명칭이 일반에 시조창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현대 자유시와 길항하는 시조 입장에서는 심각한 장애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시조 명칭을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 4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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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2022-12월(646)호 <목동살롱 83>에서
* 권갑하/ 시조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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