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어머니가 있습니다" 엮은이: 김지영(시인)>
남편의 귀환
김지영
6·25가 터지고 2년 되던 봄이었다. 일본에서 친정 큰오빠로부터 편지가 왔다. 친정 오빠는 스물네 살 강진 초동에 살 때 결혼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동갑내기 아내를 얻었다. 결혼하고 이듬해 올케는 아들을 낳았다. 큰오빠는 일본에 사는 처남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오빠도 큰오빠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 큰오빠 결혼식 때 봤으니, 그것이 두 오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오빠들을 생각하면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그런 큰오빠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 편지 속에는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소식이 들어 있었다. 남편이 미군 부대에 들어가서 군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고, 생사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조카 잘 키우라는 당부가 들어 있었다.
오빠의 편지를 받고 한동안 넋이 빠져 버렸다. 내 삶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남편은 정말 죽었을까? 시숙님이 어느 날 허망하게 우리 앞에서 사라져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몸에 힘이 쭉 빠져 나갔다.
혼자 자식을 낳고, 사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를 말리면서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꼭 돌아오리라는 희망 떄문이었다. 내게 소식도 남기지 않고 남편은 전쟁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었다. 남편과 부부로 산 시간이 너무 짧아서 미운 정 고운 정도 없었다.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꾸 아빠를 찾았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남편이 꼭 돌아오기를 바랐다. 매일 이른 새벽 동쪽 샘에 가서 물을 길어 왔다. 부뚜막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남과 북이 반으로 갈라지고 휴전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향으로 속속 돌아왔다. 나는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아들을 등에 업고 마을 초입으로 나갔다. 아스라한 들길로 누군가 들어서면 혹시 남편이 아닐까 기대하곤 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가 버렸다. 내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겨울이 되어서야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동안의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부산 시내 길거리에서 젊은 남자들을 징집해 갔는데, 거리에 트럭을 세워 놓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태웠다는 것이다. 남편은 트럭에 올라탔고, 넓은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많은 젊은 남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미군들이 책상 간격을 띄워 놓고 한 사람씩 무언가를 읽고 지나가게 하는 시험을 보게 했다. 그때 남편은 이것이 미군 입대 시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미군에 입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이 중에 대학 졸업자가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손을 들기에, 그에게 저들이 책상 앞을 지나가며 읽는 것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영어 알파벳이라 했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당신 뒤에 따라갈 것이니 조금 큰 소리로 읽고 지나가 달라고 부탁했단다. 앞사람이 읽은 대로 알파벳을 읽었고 미군 부대에 배속되었다는데, 그러니까 남편은 미군 카츄사 창설부대원이 된 것이다. 배속 후에는 미군들 대부분이 일본어를 사용했기에 일본어를 잘하는 남편이 군대 생활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미군 장교들 일본어 통역도 해 주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도착해 일주일간 기본 군사 훈련을 받았고,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마운트 매킨리호에 올라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북한의 장진호 전투에도 참여했고, 1·4 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휴전이 되고도 남편이 바로 집에 올 수 없었던 것은, 후퇴 중 남편이 타고 있던 차가 전복되면서 몸을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병원에서 부상이 나을 때까지 두 달이 넘게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소속된 부대원들이 거의 전멸한 전선에서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 그를 보호해 준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남편을 반겨 주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미래의 소망을 품었다. 새해가 돌아와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한 해 신수를 보곤 했다. 간덕댁 집 안방에 마을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신수 보는 여자가 정지문 쪽 사람들 틈에 쭈그려 앉은 날 지목했다.
"저 여자는 얼굴에 자식이 주렁주렁하네."
방 안에 있던 동네 여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남편의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내게 하는 말치고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지은 죄도 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남편이 돌아왔고, 나는 줄줄이 팔 남매의 자식을 두었다. 그 여자의 말이 딱 들어맞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 일이 어제처럼 뚜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일제의 수탈을 견디면서 나라가 독립되기를 꿈꾸며 살았고, 6·25 전쟁에 휘말려 좌익과 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했었다.
새해가 돌아오면 또 다른 희망을 품었다. 그것이 막연한 것일지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땅이 내어주는 것을 먹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통해 희망의 말을 듣고 다시 허리끈을 동여매고 앞으로 나아갔다. 매년 맞이하는 새해는 그렇게 막연하지만 새로운 다짐과 꿈을 꾸게 했었다. ▩ (p. 7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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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술집 『1929년생 오준임 그래도 꽃길이었어요』에서/ 2022. 11. 5 <이지출판> 펴냄
* 구술 · 그림 오준임/ 1929년 전남 영암 출생, 시인 김지영의 어머니/ 블로그註: 그림은 책에서 일독 要
* 김지영/ 1999년 한국문학예술총연합회 <예술세계 신인상>으로 수필 부문 등단, 2017년 ⟪국민일보⟫ 신춘문예로 시 부문 등단, 2017년 시산문 시조 · 한국예술드라마 신인상 수상, 시집『내 안의 길』『태양』『내게 연못을 주세요』, 시산문집『시간의 나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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