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오민석 평론집『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7월의 공간을 숨쉬기 : 트란스트뢰메르

검지 정숙자 2023. 1. 15. 02:27

    7월의 공간을 숨쉬기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스웨덴, Thomas Transtromer 1931-2015, 84세)

 

 

  거대한 나무들 아래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사람은

  또한 그 나무들 속에 올라가 있다. 그는 수많은 작은 가지들 속으로 가지를 뻗는다.

  그는 앞뒤로 흔들리며,

  천천히 돌진하는 투석기投石機 의자 안에 앉는다.

 

  부두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은 그의 눈을 그 아래 물에 단단히 고정한다.

  부두들은 인간들보다 더 빨리 늙는다.

  그것들은 뱃속에 은회색의 기둥들과 바위들을 가지고 있다.

  현란한 빛이 그대로 밀고 들어온다.

 

  온종일 갑판이 없는 작은 배에서 보낸 사람은

  빛나는 만들 위에서 움직이다가

  마침내 자신의 푸른 램프 그늘 안에서 잠들 것이다

  마치 섬들이 거대한 나방들처럼 지구 위에서 기어 다니듯.

    -전문(p. 167-168)

 

  ▶ 자연, 일상, 그리고 그 너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_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homas Transtromer 1931-2015, 84세)는 스웨덴 출신으로 2차 대전 이후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2011년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 위원회는 그가 "응축된, 반투명의 이미지들을 통하여 현실에 대한 신선한 접근법을 제공한다."고 노벨상 수상 이유를 밝혔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3년 이래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노벨상 후보에 올랐고, 노벨상을 받기 전에도 유럽의 유명 문학상들을 휩쓸 정도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집들은 현재 전 세계 6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지명도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출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평가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서정시의 낡고도 유구한 전통 위에 서 있지만, 서정시에 "신선한 접근법"을 부여함으로써 클리셰cliche에서 벗어났다. 그의 시들은 일상에서 시작하지만, 일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전통 서정시에 초현실주의surrealism적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수천 년의 문화적 유산을 이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옛것'을 '새것'으로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는 일상에 대한 관찰과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그것 너머에 있는 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냈다. 그가 볼 때, 자연이든 일상이든 모든 현실은 그것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의 배후에는 그것을 창조한 어떤 다른 존재, 존재 자체인 존재, 혹은 어떤 기원, 결과가 아닌 유일한 원인으로만 존재하는 원리가 있다. 트란스트뢰메르를 읽는 평론가들은 이것을 대체로 '현실 너머에 있는 신비'로 읽는다. 그것에 '신비'라는 이름이 붙여지든, '초월적 존재'라는 이름이 붙여지든, 트란스트뢰메르에게 자연이나 일상은 그 자체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존재의 그림자이며, 그는 이 그림자들 안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존재 자체'의 손길을 읽어낸다. (p. 166-167)

 

  그 무엇은 사물들 밖에 있으므로 '초월'로 불리기도 하고, 사물의 질서를 뛰어넘는 것이므로 '신비'로 불리기도 한다. (p.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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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민석 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에서/ 2022. 11. 28. <문학의전당> 펴냄   

  * 오민석/ 충남 공주 출생, 1990년 『한길문학』 창간호 신인상 시 부문 &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시집『굿모닝, 에브리원』『그리운 명륜여인숙』『기차는 오늘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평론집『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문학이론 연구서『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문학연구서『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화연구서 송해 평전『나는 딴따라다』『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서『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경계에서의 글쓰기』『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 단국문학상, 부석 평론상, 시와경계 문학상, 시작문학상 수상. 현) 단국대 영미인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