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이찬_비평집『사건들의 예지』/ 한국 아이 : 하종오

검지 정숙자 2022. 12. 16. 01:17

 

    한국 아이

 

    하종오

 

 

  십 년간 한국에서 직장 다닌 아버지는

  스리랑카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아이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곳에도 슈퍼에 가면 아이스크림이 있는지 없는지

  게임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모국이 아이에겐 다른 나라다

  아이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는 친구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아는 형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아는 누나가 많다

  한국인밖에 만난 적 없고

  한국말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는

  더 재밌는 놀이가 있다 해도

  다른 나라에 가서 놀고 싶진 않다

  아버지는 스리랑카에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있으나 이제 돌아가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잘 사는 축에 든다고 달래지만

  아이는 다닥다닥 붙은 집과 높은 담 사이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개와 종종거리는 비둘기가

  쫓고 쫓기며 지내지만

  자신이 다가가기만 하면 일시에 흩어지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다

     -전문(p. 197-198)

 

  배타적 순혈주의와 그 의미의 벡터(부분)

  "한국인밖에 만난 적 없고/ 한국말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러나 아버지가 "스리랑카" 사람인 "아이"를 "한국인"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 내면에 어떤 곤혹과 난처함을 안겨 준다. 이는 실상 너무나 자명한 것이어서 의심조차 필요 없었던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이다'라는 공통감각과 그 내부에 숙명적으로 깃들게 마련인 순혈주의라는 우리 모두의 내밀한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기호의 폭력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고,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저 "아이"를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없이 그와 함께 뛰놀고 기뻐하고 또 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할 한국인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우리의 고정된 감각과 일반적 통념으로 들어박힌 한국인이란, 순수한 민족적 혈통을 계승한 사람들로 국한될 뿐이다. 이 순수성을 교란하는 혼혈의 존재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는 것은 즉각적인 행위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어떤 윤리적 요청에 의한 당위적 실천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듯, 우리는 저 "한국 아이"와 같은 존재들에게 "자신이 다가가기만 하면 일시에 흩어지는", 소외와 차별을 절감하게 하는 억압의 세계로 작동할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측면은 한국 사회 전반이 실상 배타적 민족의식과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인 차원에서 반증한다. 나아가 우리가 저 편견과 배타의 시선을 품은 채 바라보는 사람들이란 경제적으로 궁핍한 동남아시아 출신의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들일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차원에서 민족(인종)과 계급, 다수자와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윤리 정립의 문제를 요구해 오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p. 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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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 비평집 『사건들의 예지』에서/ 2022. 10. 1. <파란> 펴냄

  * 이찬/ 1970년 충북 진천 출생,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저서『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문학평론집『헤르메스의 문장들』『시/몸의 향연』『감응의 빛살』, 문화비평집『신성한 잉여』, 2012년 제7회 김달진문학상 · 젊은평론가상 수상, 현)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