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이숭원 비평집_『매혹의 아이콘』/ 뼈 : 이현승

검지 정숙자 2022. 8. 15. 02:26

 

   

 

    이현승

 

 

  알루미늄으로 만든 목발을 보고 있으면

  살을 벗기고 흰 뼈만 꺼내 놓은 듯 처참해진다

  퇴원하고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우산꽂이에 처박힌,

  저 목발 위에 나는 한 삼 분 매달려 있었나.

 

  피부를 열고 살을 갈라 구멍을 내고

  끊어진 인대를 나사못으로 고정시키고

  다시 살을 덮고 피부를 꿰매고 붕대로 감는 동안

  나의 참담은 자고 있었다.

 

  집도 부위 위로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낱낱이 파헤쳐졌을 애욕의 처소를 석고로 봉인하고

  여름 내내 부끄러움인지 노기인지 알 수 없는 가려움을 견뎠는데

  엉기어 말라붙은 핏자국, 칠자국, 칼자국들이 시끄럽고 가려웠는데

 

  대충 묻고 싶은데 자꾸만 들고 나오는 싸움꾼처럼 집요한

  몸이,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몸이

  가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는데

  무심한 여름의 밤은 길고 덥고 다만 무겁게 출렁거리고

  부끄러움도 분노도 가려움도 극에 달하면 참혹스럽다.

 

  노골이란 뼈를 드러내는 것인데

  우산꽂이에 처박힌 알루미늄 뼈,

  고무 신발까지 신고 있는 저 뻣뻣한 다리를 보고 있으면

  뼈에 사무친 것이 불쑥 살을 열고 나올 것 같다.

 

  파헤쳐질수록 더 깊숙하게 숨는 치욕이

  앙다문 이빨 사이로 걸러진 욕설처럼

  앙다문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온 신음처럼. 

     -전문,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2012. 7.)

 

 

    고독한 소년이 체감한 사랑의 온도_이현승(발췌)_ 이숭원/ 문학평론가

  이 시는 점착력 있는 묘사의 정신과 사유의 힘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어 성공한 작품이다. 사소한 실수로 부상을 입은 부끄러움, 수술 과정에서의 수치심과 굴욕감, 회복기의 지루함과 고통스러움, 치료를 끝낸 다음의 허탈감 등 다양한 감정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삶의 세부들을 솜씨 있게 엮어 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관념적인 명상보다 생명 현상의 속성과 양태를 세밀하게 묘파하여 삶과 죽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표현의 힘이 있다. 퇴원 후 느낀 참담한 심정을 우산꽂이에 꽂힌 목발에서 자신이 한 삼 분 매달려 있었다고 표현한 것이라든가, 깁스 후 병소 부위의 가려움을 다양한 감각으로 표현한 대목, "노골"이란 말의 뜻과 몰골이 드러난 알루미늄 뼈의 상태를 병치시킨 표현 등을 통해 생존의 치욕스러움을 상징화한 점이 매혹적이다. (p. 시 84-86/ 론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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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숭원 비평집 『매혹의 아이콘』에서/ 2021. 6. 30. <파란> 펴냄

  * 이숭원李崇源/ 1955년 서울 출생, 1986년 평론 부문 등단, 저서『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초록의 시학을 위하여』『폐허 속의 축복』『감성의 파문』『세속의 성전』『백석을 만나다』『시 속으로』『미당과의  만남』『김종삼의 시를 찾아서』『목월과의 만남』『몰입의 잔상』『구도 시인 구상 평전』『탐미의 윤리』, 충남대 · 한림대 ·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시와시학상 · 김달진문학상 · 편운문학상 · 김환태평론문학상 · 현대불교문학상 · 유심문학사 ·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