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밤이 있다 외 1편
고우리
너를 생각하며
목이 찢어지도록 우는 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소리 내지 못해
삼키고 삼키느라 목이 아프다
맨손으로 닦아낸 눈물이 마르는 속도와
흐르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
두 손이 눈물범벅이다
가슴팍까지 젖은 티셔츠 무게만큼이라도
네게 진 빚을 덜어 주면 좋겠다
내일이면 잊혀질 미안함이라도
목구멍 상처 또한 아문다고 해도
오늘 밤은,
빈주먹으로 가슴 치며
네 이름 부르고 또 불렀다고
언젠가 멋쩍게 웃으며
변명할 수 있는 밤이었다고
나 혼자 기억하고 싶은 그런 밤이 있다
-전문(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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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접착제가 처음이라면
주의하세요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날 거예요
콧구멍 안쪽 깊은 곳이 찌릿할 거예요
얼굴을 최대한 멀리 하고
재빨리 사용하고 뚜껑을 닫으세요, 꽉 잠그세요
손에 묻은 건 문지르고 문질러져서 저절로 없어질 거예요
바닥에 엎지른 건 어쩌지, 하는 틈에 이미 굳어 버려서
주워 담을 수도 닦아낼 수도 없게 되어요
가령 당신이 쏟아 버린 내 이름처럼
무심코 휴지로 닦으려다 휴지마저 바닥에 붙을지도 몰라요
원래 그런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세요
사용하기 전에 주의사항을 꼭 읽고, 기억하세요
그래서 사용 연령 제한이 있는 거겠죠
이 모든 것이 뜨겁고도 강렬한 첫 키스와도 같아서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깊이 박힐 거예요
사랑은 초강력이며, 순간이겠지요
순간이라는 말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뜨겁고 멀답니다.
-전문(p.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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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순간이라는 말, 뜨겁고 멀다』에서/ 2022. 11. 15. <상상인> 펴냄
* 고우리/ 2015년『천안문학』으로 등단, 시집『푸른 달의 시선』『민달팽이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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