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상여/ 이돈형

검지 정숙자 2022. 12. 4. 01:21

 

    상여

 

    이돈형

 

 

  사람이 사람을 메고 허물어져라 상여 나간다

 

  죽음이 출렁이는 하늘 아래를 머리로 이고 삶이 출렁이는 땅 위를 발로 밟아가며 상여 나간다

 

  흰 상여 나간다

 

  가벼움을 한줌 번쩍 들고 가는 사람들과 한줌의 가벼움이라도 남았을까 두 손 탁 놔버린 사람이

 

  모두 희어서 눈부신 멸망

 

  있음도 없음도 아닌 죽음을 떠메고 사람들은 왜 왔었소 왜 왔었소 내딛고 한 사람은 왜 왔었나 왜 왔었나 내딛는다

 

  요령소리에 갯바람이 불어오다 한 소식 나가신다고 두 갈래로 갈라져 그 몸을 숙이고

 

  뒤따르는 자들마저 마음이 희어서 죽음에 장단 맞춰 나간다

 

  흰 상여 나가신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상여'는 죽음 제의에 쓰는 소도구이지만 상징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메고 허물어져라" 하며 세상을 떠나가는 형이상학적 장치이기도 하다. 죽음이 출렁이는 하늘 아래서 삶이 출렁이는 땅을 밟아가는 이들은 "모두 희어서 눈부신 멸망"을 떠받들고 나간다. 그때 가장 가벼워지는 순간이 탄생한다. "있음도 없음도 아닌 죽음"이야말로 그들로 하여금 삶을 되묻게 하면서 동시에 "한 소식 나가신다고 두 갈래로 갈라"지게끔 해주기도 한다. 그저 몸 숙이고 뒤따르는 자들의 마음처럼 희미흰 죽음에 장단 맞추는 상여는 소멸이야말로 '사라짐의 충만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순간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p. 시 28-29/ 론 140-141) (유성호/ 시인 · 문학평론가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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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제3회 선경문학상 수상작 『잘디잘아서』에서/ 2022. 11. 25. <상상인> 펴냄

  * 이돈형/ 2012년『애지』로 등단, 시집『우리는 낄낄거리다가』『되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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