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느 비정규직의 고백 외 1편/ 조헌주

검지 정숙자 2022. 12. 1. 01:59

 

    어느 비정규직의 고백 외 1편

 

    조헌주

 

 

  오늘 하루를 가슴 떨리게 열심히 살아

  기쁜 마음에 나에게 주는 술 한 잔 신나게 쏟아부어 주어도 좋으련만

  난 하루살이가 아니기에 내일이 또 불안하여

  오늘의 보람이 내일에의 막연할 슬픔 아닌 슬픔일지 모를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따뜻한 위로조차 되어주질 못하고

  새하얀 별빛이 소주잔 위에서 떨고 있다

  정규직보다 하루살이가 더 부러운 오늘

  나는 하루살이보다 더 정열적인 오늘을 살았다

  반짝이는 별빛을 몇 잔 마시고

  아직 가지 않은 오늘의 기쁨을 노래하며

  탭탠스의 리듬으로 온 지구를 발바닥으로 두드리고

  투우사의 붉은 방토를 멋지게 휘날리며

  거칠게 돌진해오는 내일을 향해

  굵고 힘찬 휘파람마저 날려본다.

    - 전문(p. 55)

 

 

      ------------------

    겨울의 기억

 

 

  겨울에는 선들만이 살아남는다. 

  황태 덕장에 내어걸린 겨울은 한여름 찌운 잉여의 살들을 마른바람이 새긴 결 따라 살뜰히도 표족하니 잘도 빼내어 말렸구나.

  시냇길 옆으로 난 마을 길 따라 듬성듬성 난 바람결 따라 녹이 슨 대문들 지나 메마른 형태들로 흩어놓은 쓸쓸한 겨울의 추상抽象을 본다.

  닫힌 대문 밖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이름 모를 화분 하나 풀이 죽어 놓여있고 풍성한 잎새에 가려 한여름엔 보이지 않던 고단하게 늘어진 전깃줄이 전봇대를 힘겹게 부여잡았다. 빨랫줄에 널린 몇 마리 참새들 바람에 일렁이며 외로이 펄럭일 때 높은 나무 덩그러니 심장처럼 박힌 까치집은 언제나 겨울엔 더 커져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동심 묻은 앳된 낙서가 폐가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은 햇살 받아 따사로운데 고운 감 두어 개 담장 너머로 오지 않을 아이들 기다리고 메마른 다리로 여윈 가지 움켜쥔 산새 하나 집을 지킨다.

  모두가 숨죽인 적막한 겨울. 눈은 순결하게 대지를 덮고 그 위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쓸쓸한 이야기를 흔적으로 남겼다. 간밤에 마을까지 내로온 노루는 냇가를 따라 다시 산 위로 사라졌도 먹이를 찾아 눈 위를 서성이던 새 발자국은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첫새벽 기차 타러 일터로 떠난 어느 가장의 정직한 발걸음은 해 뜬 늦은 오후에야 사라질 것을 안다. 쓸쓸한 생각을 일으키는 바람. 생각조차 깎아내고 깎아내어 한 줌의 독백 가슴에 남긴다. 나의 유년의 이른 아침 머언 일터로 떠난 아버지의 발자국은 항상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나 있었다.

  겨울도 이제 끝나갈 무렵. 얼어붙은 대지에서 메마른 선으로 주고받았던 감정의 언어들을 밟아가며 지난至難한 생명들끼리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던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린다. 아직 선명했던 발자국. 한 점 두 점 내려앉는 눈이 삶이 흔적들을 말없이 몰래 지우고 연민의 그림자 하얗게 덮인 자리에 새로이 고운 덫을 놓고 햇볕을 얹어 주었다.

    - 전문 (p-92-93)

 

  ----------------------------

  * 시집 『새로이 고운 덫을 놓고 햇볕을 얹어 주었다』에서/ 2022. 11. 17. <상상인> 펴냄

  *  충북 음성 출생, 2018년『시사문단』으로 시 부문 &  2021년『월간문학』으로 동화 부문 등단,에세이집『인문학과 함께하는 청소년의 행복찾기』『하나 사랑 그리고 별』, 현) 연재 중 ⟪중부매일신문⟫ [조헌주의 철학 오디세이 ]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썩, / 고우리  (0) 2022.12.03
프시케, 날갯짓/ 김광기  (0) 2022.12.02
소크라테스에 대한 변명/ 조헌주  (0) 2022.12.01
헤르만 헤세의 나무 외 1편/ 김윤하  (0) 2022.11.30
목필*/ 김윤하  (0) 20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