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썩,
고우리
쓰러지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쓰러질 때와 일어날 때
그 틈에서 순간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기 전에
풀썩, 의 진행은 끝나야 했다
시선의 방향은 어디든 상관없다
주저앉은 나를 들키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준비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순간이라는 동안에
너를 쫓는 내 시선을 읽는다
학습을 통해 익숙해진 낯선 것들이
무뎌진 것들로 개명하면서
하루만큼 더 낯선 순간을 만나고 싶어
매일 무너지거나 주저앉는 나는
나날이 낯설어지는 너를 찾는다
순간이 순간으로 익숙해지길 바라며
모든 쓰러지는 순간에 네가 있는 건 아닐 테니
풀썩, 의
방법을 순간에게 묻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은 "쓰러지는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듯이 절망의 순간에도 요령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쓰러지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다. 이 짧은 순간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풀썩 일어나는 사고를 "풀썩,"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풀썩" 다음에 쉼표를 찍는 것으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쉼표를 찍는 것으로 풀썩이라는 단어는 단지 넘어지는 모습을 말해주는 단순한 부사를 넘어 풀썩 다음 일어나는 그 순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해 준다. 이 쓰러지는 순간에 익숙해질수록 나를 보는 시선은 점점 낯설어져 가고 나는 쓰러짐에 덜 민망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절망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지고 절망의 순간이 가져오는 그 "풀썩," 일어나는 순간을 의식하며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절망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p. 시 20-21/ 론 113-114)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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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순간이라는 말, 뜨겁고 멀다』에서/ 2022. 11. 15. <상상인> 펴냄
* 고우리/ 2015년『천안문학』으로 등단, 시집『푸른 달의 시선』『민달팽이 주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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