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현대시조의 지평을 열어가시는 시조 사랑꾼 이우걸 선생님께/ 최도선

검지 정숙자 2022. 11. 21. 02:31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현대시조의 지평을 열어가시는 시조 사랑꾼 

         이우걸 선생님께

 

    최도선/ 시인

 

 

  선생님 올해도  어느새 단풍이 짙어졌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뵈온 게 제 첫 시조집 해설을 써 주셨던 1994년 겨울 중앙일보사 로비에서였지요. 그때 처음 뵙고는 그다음 해인 1995년 봄, 제가 시조계에 이름을 막 올려놓을 시기에 느닷없이 문단을 떠났었지요. 그 후 20년 긴 세월을 훌쩍 보내고 다시 붓을 잡으며 시집(자유시)을 출간한 것이 2015년이었으니 시조계에선 제 이름조차 잊혀졌지요. 그해 겨울 선생님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더니 제 목소리를 기억하고 계셔서 너무 놀랐었어요. "최도선 시인 살아 있었어요? 죽었다고들 하던데! 살아 있었다니 고맙네." 하시며 무척이나 반가워하셔서, 어제 뵙고 돌아온 듯했어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저를 기억하고 계실까 하여 제 첫 시조집을 꺼내 선생님께서 써 주신 해설을 읽어봤어요. 해설 첫머리를 보니 이렇게 쓰셨더군요. "최도선을 꼭 한 번 본 적이 있다. 안경알 속의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빠른 걸음걸이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나는 늘 이 시인을 자신만만한 삶을 꾸려가는, 후퇴할 줄 모르는 열정의 시인으로 생각해 왔다. (중략) 그 후 시 전문지에 자유시 특집을 내었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의 성격상 어느 곳에 매여 있을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도선은 개성적인 서정시인이다." 이 글을 보니 기억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 가끔 전화를 드리면 그동안의 시조계의 발전상을 들려주시며 좋은 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으니 부단히 노력하라고 일침을 가하실 때마다 진심 어린 말씀에 감사했어요. 문단에 다시 나와 보니 스승도 문우도 없는 제게 한 번밖에 봅지 못한 선생님께서 진솔한 말씀으로 격려해주셔서 큰 힘이 되었지요.

  알베르 카뮈가 고등학교 스승 장 그르니에의 『섬』을 펼쳐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라고 쓴 것을 보면 충격을 지나 존경심의 발로였겠지요. 그런가 하면 장 그르니에는 그를 제자 아닌 문학 친구(15살 나이 차이가 나지만) 카뮈가 사망하기 전까지 주고받은 편지는 제게 큰 부러움이었어요. 이 두 문학인이 주고받은 숨결에서 영감을 느끼며 저는 은근히 선생님께 기대는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시조계가 이만큼 발전해온 과정의 중심에는 선생님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후배들에게서 들었습니다. <한국시조시인협회>를 안정되게 이끌어 오신 일, 수준 높은 시조인 육성을 위해 평론가(장경렬, 유성호, 엄경희 등)의 영입으로 시조의 폭넓은 진단을 펼 수 있었음도. 시조 보급 운동을 위해 자유시 문예지들에 시조를 실어 한국시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관계 도모에 힘쓰신 일, 그리고 학교교육현장에서 시조에 관한 관심이 너무 미약함을 애타 하신다는 말씀을요. 몇 년 전 제가 기획을 맡았던 월간 시 전문지에 시조를 싣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무척이나 반가워하시며 예전에 모 월간지에 3년 시조를 싣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쉼 없게 이끌어 보라며 많이 도와주셨지요. 그 문예지에 월평을 연재할 때도 응원해주셔서 무모하게도 1년 6개월이나 썼지요.

  "나는 시골 사람이다. 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후배들을 위해 작게나마 문예지 『서정과현실』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네. 1년에 상·하반기로밖에 못 내 아쉽지만." 이렇게 결의에 찬 말씀을 하실 때 진정한 문학의 도가 무엇인지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10월 14일 오후 선생님께서는 울산에서 <외솔문학상>을 받고 계시겠군요. 찾아뵙지 못하고 축하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편지를 올립니다.

  선생님의 문학관이 있는 우포늪으로 올해도 겨울 철새들이 찾아오겠지요. 신비함을 간직한 우포늪의 물안개를 떠올리며 글을 맞습니다. 늘 건안하십시오, 선생님. ▩ (p.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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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서울』 2022-11월(253)호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208> 에서

  * 최도선/ 시인,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겨울 기억』『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 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