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정인지서」의 진실과 감동을 나누자/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검지 정숙자 2022. 11. 19. 02:47

 

    「정인지서」의 진실과 감동을 나누자

          단군 이래 최고의 명문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인류 문명의 기적,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과 8인의 공저이고 8인의 대표는 세종보다 한 살 많았던 정인지이다. 정인지는 세종의 신하였고, 학문의 동지였으며 당시 대제학으로 덕망 있는 사대부였다. 세종의 수학 스승이었을 만큼 수리, 천문,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한 융합 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해례본에 마지막 부분에서 남긴 이른바 「정인지서(정인지 서문)」는 훈민정음의 감동과 진실을 가장 정확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풀어내고 있다. 나는 감히 이 서문을 단군 이래 최고의 명문으로 추켜세우고자 한다. 전문을 그대로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해설은 최대한 줄이기로 한다.

  「정인지서」는 주제로 보면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천지자연의 가치'에 대해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자가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뜻을 통하고,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이치를 실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능히 글자를 바꿀 수가 없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무릇 진정한 문자는  천지자연의 소리와 그 이치를 그대로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대 문자가 그런 의도로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함을 말소리의 다양성과 중국 한자를 빌려 쓰는 우리 문자생활의 모순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구별되고 말소리의 기운 또한 다르다. 대개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 말은 그 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없다. 그래서 중국 글자를 빌려 소통하도록 쓰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끼우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소통할 때 막힘이 없겠는가? 중요한 것은 모두 각각 놓인 곳에 따라 자연스럽게 할 것이지, 억지로 같게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이 중화(중국)와 같아 견줄 만하다. 다만 우리말은 중국말과 같지 않다. 그래서 한문으로 된 글을 배우는 이는 그 뜻을 깨닫기가 어려움을 걱정하고, 범죄 사건을 다루는 관리는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을 근심했다.

 

  우리말소리에 맞는 글자가 아닌 중국 글자(한자)를 빌려 쓰는 모순은 몹시도 커 글을 제대로 배울 수 없고, 범죄 사건의 속사정조차 제대로 기록할 수 없다. 제대로 우리말을 적고자 만든 이두는 모순을 더할 뿐임을 "옛날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처음 만들어서 관청과 민간에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러나 모두 한자를 빌려 쓰는 것이어서 매끄럽지도 아니하고 막혀서 답답하다. 이두 사용은 오로지 몹시 속되고 일정한 규범이 없을 뿐이니, 실제 언어 사용에서는 그 만분의 일도 소통하지 못한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인지는 세종이 이런 문자 모순을 바로잡고자 1443년 12월에 창제를 마무리했다는 실록 기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계해년 겨울(1443년 12월)에 우리 임금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여, 간략하게 설명한 '예의'를 들어 보여 주시며 그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다. '상형' 원리로 만들어 글자는 옛 '전서체'를 닮았으되, 말소리에 따라 만들어 소리는 음률의 일곱 가락에도 들어맞는다. 하늘·땅·사람의 세 바탕 뜻과 음양 기운의 신묘함을 두루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스물여덟 자로 끝없이 바꿀 수 있어, 간결하면서도 요점을 잘 드러내고, 정밀한 뜻을 담으면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이 다 가기도 전에, 슬기롭지 못한 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한문을 풀이하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훈민정음으로 소송사건을 기록하면,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1443년 실록 기록을 거의 그대로 전달하면서 훈민정음이 천지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담았으면서도 학문의 문자로도 실생활의 문자로도 매우 뛰어남을 강조하고 있다. 왜 이렇게 뛰어난 문자 기능을 가졌는지 '훈민정음의 효용성'이 곧바로 이어진다.

 

  글자 소리로는 맑고 흐린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음악 노래로는 노랫가락을 어울리게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글자가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어디서든 두루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비록 바람소리, 두루미 울음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모두 적을 수 있다.

 

  그럼 이런 놀라운 새 문자를 백성에게 어떻게 알리고  가르칠 수 있을까? 해례본의 편찬 동기가 이어진다.

 

  드디어 임금께서 상세한 풀이를 더하여 모든 사람을 깨우치도록 명하시었다.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과 부교리 박팽년과 신숙주, 수찬 성삼문과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와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가지 풀이와 보기를 지어서, 그것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바라건대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스승 없이도 스스로 깨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례본의 저술을 마치게 되었으니 훈민정음 창제가, 해례본 저술의 책임자인 세종에게 헌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훈민정음의 근원과 정밀한 뜻은 신묘하여 신하된 자들로서는 감히 밝혀 보일 수 없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업적이 모든 임금들을 뛰어넘으셨다.

 

  여기서 충격적인 고백이 노출된다. 세종을 하늘이 내린 성인이요 모든 임금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중국 황제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우리 임금보다 중국 황제를 더 받들어야 하는 당시 사대 문화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헌사이다. 이런 헌사를 바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어진다.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다. 무릇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지 않음이 아니로되 만물의 뜻을 깨달아 모든 일을 온전하게 이루게 하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뜻을 받은 세종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만든 훈민정음! 이 문자로 인해 이제 진정한 지혜의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는 가슴 벅찬 선언으로 「정인지서」의 감동 서사는 마무리된다.

  지식은 나누고 실천할 때 지혜가 된다. 한자와 한문으로 기록된 지식은 훌륭하나 평등하게 두루두루 나눌 수 없으니 진정한 지혜가 되는 지식이 되지 못한다. 이제 훈민정음으로 인해 진정한 지혜의 세상을 열게 되었다는 이 감동. 이것이 인류 문명의 대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며 이런 감동을 기술한 『훈민정음』 해례본이 인류 최고의 고전이 아니면 무엇이 고전이겠는가?

  정인지는 당시 사대 정치 문화에 따라 중국 연호로 "정통 11년(세종 28년, 1446년) 9월 상순,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관사 세자우빈객 정인지는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가 쓰옵니다."와 같이 마무리하고 있지만, 중국 황제를 뛰어넘는 우리 임금, 세종에 대한 무한 존경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정인지 서문을 대한민국에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든 대학교에서든 그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 (p.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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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서울』 2022-11월(253)호 <특별연재-김슬옹 박사의 한글 이야기 11> 에서

  * 김슬옹/세종국어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