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사생활_시인의 전원생활>
여름을 필사하면 피는 꽃
한길수/ 시인
다릅나무에 새털구름 같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무더위에 꽃을 피우는 다릅나무 그늘은 그래서 더 시원합니다. 책을 펼쳤지만 눈에 드는 것은 나뭇잎 사이로 얼비치는 꽃구름입니다. 구름이 그리는 풍경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그만큼 세월도 흐른다는 것도 잊게 됩니다. 구부능선에서 서성거리던 구름의 표정이 자주 바뀌는 동안에도 책장은 그대로여서 생각은 여전히 세월에 비켜서 있습니다.
다랑이 논에 물을 댑니다. 지난 봄 자투리땅에 흙을 메우고 논둑을 다져서 경관용 논을 만들고 모내기를 했습니다. 수확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서 풍년이 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마른 논에 물을 대는 것을 의식처럼 치르는 아침입니다.
논이 귀한 산골마을이라서, 온통 자갈뿐인 화전 밭이 대부분이어서, 논을 만들고 벼를 키우는 일은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논에 물을 대는 일은 자식에게 먹거리를 들이미는 일 같아서 논바닥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싶은 겁니다.
논둑에 물이 늘 찰랑거려야 개구리밥 오종종 떠다니고 곤줄박이 날아와 목욕을 하며 개운해 하겠지요. 벼는 제법 자라서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풍성하게 채워지면 내 마음도 풍년처럼 넉넉해지는 것입니다.
비닐하우수 한 동에 꽃차용으로 심은 꽃이 한창인데 김장 배추랑 무를 심으려면 미련 없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족두리꽃 피고 진 자리 씨앗 여물고 제철인 금계국은 한 뼘 더 키웠습니다. 풍접초 여문 씨앗은 받아두고 약용으로 쓸 자소 깻잎은 베어서 그늘에 말립니다. 쓸모 있는 것들을 대강 추스르고 예초기를 깨워 꽃들을 베어냅니다.
예초기가 지나가며 푸르던 것을 베어낸 자리마다 제 몸을 키워낸 뿌리가 애처롭습니다. 쇠스랑으로 깊게 뻗은 뿌리를 뽑아냅니다. 밭을 갈아엎고 말끔해진 고랑마다 풀냄새가 싱그럽게 깔려 있습니다.
오랜만의 괭이질로 손바닥엔 물집이 잡히고 땀방울이 소나기 내리듯 요란하게 떨어집니다. 계곡으로 내달려 물결에 몸을 맡깁니다. 풍덩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시원함을 품고 있었을까.
귀농 귀촌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 해마다 솥단지를 필두로 감자부침개, 삼겹살, 고급스런 토마토 샐러드까지 바리바리 챙겨서 천렵을 하러 옵니다. 술병과 야채는 흐르는 계곡에 담가놓고 감자를 깎아 강판에 간 다음 지글지글 기름에 튀기듯 부치면 강줄기 따라 고소한 냄새가 물결칩니다. 그러는 사이 남정네들은 족대와 지렛대를 챙겨서 물살을 거스르며 첨벙거립니다.
며칠 전 내린 폭우로 물살은 살이 올라 허벅지를 넘실거립니다. 물살을 제치고 돌덩이를 흔드는 지렛대가 내는 쇳소리에 물고기들은 다른 돌 틈으로 숨지만 가는 길을 족대가 막아섭니다. 양파 망이 꺽지, 탱가리, 수수종개, 버들치, 깔딱메기로 쿨렁거립니다. 몸집은 넉넉하지 않아도 매운탕 맛을 내는 데에는 그만입니다.
양은솥이 끓어오르자 얼큰함이 계곡을 채웁니다. 살둔계곡 차가운 물에 첨벙거리느라 식은 몸이 얼큰함으로 데워집니다. 배부른 마음을 달랠 겸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자갈밭을 서성거립니다. 물결이 스치며 지나간 자국을 온몸에 두르고 돌과 돌이 부딪친 상처마저 매끄럽게 다듬어놓은 자갈의 표정을 감상하다보면 거칠게 살아온 사람의 성격이 부드러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거친 물살에, 강렬한 태양에, 세찬 바람에 우리는 견디며 부드러워지고 매끈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여름이 지나고 나면 모난 성질은 한결 순해지고 매끈해질까. 달구어진 조약돌 하나가 발가락 사이에서 따뜻함을 전해줍니다.
장독대 옆 사과나무가 사과를 잔뜩 매달았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서리가 내려서 해걸이를 몇 해째 해오다 올해는 꽃샘추위를 잘 견디고 주먹만 한 사과를 가지마다 매달았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한 산까치 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지요. 맛이 들기 시작해서 붉은 빛을 띠는 것을 용케 알라차리고 잘 익은 것부터 흠집을 내며 파먹기 시작합니다. 산까치가 흠집을 내면 말벌이 다녀가고 개미는 밤낮없이 행렬을 이룹니다. 과 한 알이 품은 우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갈까. 자연에서는 경쟁자가 사람이 아니어서 괜찮습니다.
이른 봄에 병아리 12마리를 부화시켰던 바둑자보가 서열 2위로 올라섰습니다. 작고 귀여워서 관상용으로 기르는데 병아리가 너무 많이 태어났습니다. 그중 대여섯 마리를 이웃으로 시집을 보냅니다. 병아리 사돈을 맺은 사부인이 왕겨 한 가마니와 사료 두 포대를 보내왔습니다. 병아리 아빠였던 수탉을 답례 차 사돈댁으로 보냅니다. 가서 병아리를 잘 돌봐주든지, 그 집 저녁상에 기름진 음식으로 복달임을 하든지 알 바는 아니지만 노을처럼 붉어지는 마음입니다.
꽈리가 등잔불처럼 열매를 환하게 켜 놓았습니다. 줄줄이 달린 열매 무게에 겨우 버티고 섰거나 기울어 쓰러진 것이 보입니다. 열매를 맺고 키우느라 허리는 휘어지고 잎은 누렇게 떡잎으로 변해가는 중입니다. 맨 아래 쪽에 달린 것은 알이 제법 크고 잘 익었지만 대여섯 개를 지나면서 힘에 부쳤는지 열매는 작아지고 여위었습니다.
태풍에 된 비 내리면 그마저 열매마다 흙이 튀거나 아예 쓰러질 게 뻔해서 숫돌에 새파랗게 간 낫을 들고 꽈리 대궁을 조심스레 베어냅니다. 한아름 대궁을 마당에 펼쳐놓고 잎을 떼어내자 꽈리만 남은 대궁에서 붉은 추억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깊은 밤 문풍지를 울려대며 들리던 꽈리 소리, 누가 이 밤에 꽈리를 그토록 간절하게 불어대나. 잠든 줄 알았던 누이가 스르륵 일어나 문을 여는데 달빛에 얼비치던 그림자 하나.
꽈리 소리는 가늘하고 달빛은 아늑한데 소곤대던 여름밤의 연기는 아련하기만 합니다.
청첩장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장을 보내야 했던 지인이 방문합니다. 산골을 찾아오는 발걸음은 애써 가벼운데 맞이하는 마음은 두서가 없습니다. 가마솥에 장작불 지피고 토종닭은 삶습니다. 가시가 제법 뾰족해진 엄나무 가지를 잘라 다듬고 산뽕잎 한 움큼에 쟁여두었던 능이랑 싸리버섯을 넉넉히 넣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과 마주한 상차림은 어두워도 좋습니다. 별빛으로 입모양을 읽어야 해서 대화가 어색하게 흘러도 맥락은 술이나 하자로 읽힙니다. 때마침 유성 하나가 먹먹한 침묵을 잠깐 비추고 사라집니다.
콩밭을 기웃거리던 산비둘기가 잿빛 된소리를 뱉어냅니다. 두 번째 개화를 준비 중인 산목련이 식은 촛불처럼 하얀 꽃망울을 수줍게 펼칩니다. 고개를 내민 벼이삭이 아직은 더 겸손해야겠다며 고개를 조금 더 숙입니다. 지지대를 따라 힘차게 뻗어가던 호박 덩굴이 잠자리를 불러 쉬게 합니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 풍경이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바지랑대가 V자를 그리며 꼿꼿합니다. 그림자가 가을 쪽으로 기울어갑니다. ▩ (p. 250-255)
* 블로그주: 사진들은 책에서 감상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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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9월(393)호 <시인들의 사생활 57_한길수> 에서
* 한길수/ 시인, 2015년『시사사』로 등단, 시집『고립낙원』, 시산문집『살둔마을에 꽃이 피고 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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