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검空劒*
정숙자
눈, 그것은 총체, 그것은 부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뿐더러
능선과 능선 그 너머의 너머로까지 넘어간다
눈, 그것은 태양과 비의 저장고
네거리를 구획하고 기획하며 잠들지 않는
그 눈, 을 빼앗는 자는 모든 걸 빼앗는 자다, 하지만
그 눈, 은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눕힐 수 없는
칼이며 칼집이며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이다
양날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수천수만, 아니 그 이상의 팔이라 할까
(나부끼지 않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바람-그냥 보냅니다. 대충 압니다. 나누지 않은 말 괜찮습니다. 여태 잎으로 수용하고 뿌리로 살았거든요. 대지의 삶은 적나라한 게임입니다. 간혹 구름이 움찔하는 건 어느 공검에게 허를 찔렸기 때문, …일까요?)
공검은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구름 속 허구를 솎는
그를 일러 오늘 바람은 시인이라 한다
공검은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다
-전문, 『공검 & 굴원』(미네르바, 2022)
* 공검空劍: 허虛를 찌르는 칼(필자의 신조어)
▣ 시가 할 수 있는 일들(발췌) _이성혁/ 문학평론가
『시와산문』 2022년 여름호에 실린 시들을 순서대로 읽다가 만난 정숙자의 「공검空劍」은 어떤 강렬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시적 사유의 길로 필자를 이끌었다. 이 시는 신작시는 아니지만, 이 자리에서 언급해보고 싶은 시다.
*
이 시에서 ‘눈’은 한자어로 目을 의미할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도 의미할 수 있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보통 눈은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눈인 것이다. 시인의 눈은 어떤 것이기에? 그 눈은 시적 비전 “내일을 간직한 자의 새벽” 을 가진 눈, 내일의 세계를 재구성하며 재창조하는 “잠들지 않는” 눈이다. 그래서 그 눈에서 나오는 눈빛은 칼처럼 날카롭다. 세계를, ‘네거리’를 다시 구획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베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시인에게 그 눈은 ‘모든 것’일 터이다. 시인의 눈을 빼앗는 자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는 시인의 “모든 걸 빼앗은 자”겠다. 그러나 그땐 이미 시인은 시인이길 멈춘다. 권력자는 시인의 눈을 빼앗는다고 해도 시인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시인의 눈은 결코 “마지막까지 뺏을 수 없는” 것이어서, 만약 권력자가 빼앗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눈은 시인의 눈이 아니게 된다. 그 눈은 칼날이 서 있어서 권력자가 잡을 수 없다. 그 칼이 바로 정숙자 시인의 새로 만든 단어인 ‘공검’이다. 시인은 이 공검을 “허虛를 찌르는 칼”이라고 주석에서 해설해놓았다. 마지막 두 연에서 시인이 말하듯이 공검은 “구름 속 허구를 솎”는 칼이기에 “육체 같은 건 가격하지 않”는 칼인 것이다. 시의 눈은 저 “능선 그 너머의 너머” 하늘 위 ‘공’의 세계, ‘허’의 세계를 베어내고 다시 저 “능선 그 너머의 너머” 하늘 위 ‘공’의 세계, ‘허’의 세계를 베어내고 다시 구성한다(“허구를 솎는”다). 그럼으로써 시인은 정신의 세계를 ‘가격’하고 “지운 것을 듣고, 느낌도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위의 시는 정숙자 시인의 시인으로서의 결연한 정신주의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타협 없는 결연함이 필자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이유였던 것 같다. (p. 시 242-243/ 론 242 *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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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산문』 2022-가을(115)호 <지난 호, 좋은 시 다시 읽기>에서
* 이성혁/ 1967년 서울 출생, 2003년⟪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저서『불꽃과 트임』『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 『서정시와 실재』 『미래의 시를 향하여』 『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 『사랑은 왜 가능한가』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시, 사건, 역사』 『이상 시문학의 미적 근대성과 한국 근대문학의 자장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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