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시인광장』 2022-11월호/ 시인과의 이메일 좌담>
정숙자 시인을 만나다
- interviewer: 김효은(시인,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interviewee: 정숙자(시인)
■ 김효은: 정숙자 시인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마비되고 삶의 모습들이 180도 전환된 것 같아요. 문학계도 행사나 모임들이 대부분 취소되거나 간소화되었어요. 그만큼 작가들끼리의 교류도 줄어든 것 같고 서로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새로운 친분을 쌓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요. 그래도 선생님 얼굴을 뵐 수 있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거리 두기가 법제화되고 서로가 멀어지고 고립된다 해도 인간의 삶은, 특히 작가의 삶은 어차피 고독한 거니까요. 선생님 시 「극지 行」에서처럼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한층 더 고독해”지는 게 삶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거리 두기의 삶이 의외로 저랑은 잘 맞는 것 같아서 자가격리를 한 달 가까이 할 때에도 고립감이나 단절감을 거의 느껴보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조용한 섬에 ‘한 달 살기’ 다녀온 것처럼 고즈넉하고 좋더라구요. 단점이라면 대학 강의를 녹화해서 온라인으로 진행했는데, 글쓰기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하고 소통을 직접적으로 못 하니까 그게 좀 많이 아쉽고 답답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애들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요. 이번 학기부터는 다행히 대면 수업이 전면화되어서 물리적으로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신입생들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서 일상의 활기를 되찾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만 3년에 가까운 이 지난하고도 험난했던 코로나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그리고 최근의 일상이나 근황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앗, 최근에 중요한 상(김삿갓 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저 또한 기쁘고요. 많이 축하드립니다.
□ 정숙자: 반갑습니다. 김효은 시인께서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동안 이사를 했어요. 코로나가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시장경제는 심상치 않았던가 봐요. 아들 사업이 잘되지 않아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30년이나 살던 집을 2020년에 팔았고, 2021년에는 현재 이 집으로 이사를 했고 2022년, 올해는 시집을 냈으니까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살았다고나 할까요(ㅎㅎ). 이러구러 집값 폭등하는 가운데 아이들과 제가 중심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 여깁니다. 게다가 꿈에서도 꿈꾸지 않았던 큰 상을 받고 보니 천지신명께 손 모아 감사드리고, 그동안 저를 도와주신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 은혜록恩惠錄을 새겨보기도 합니다.
■ 김효은: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30년 거주한 집을 팔고 이사를 하셨다니······.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와중에도 왕성한 필력과 활동을 보여주시고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할까 하는데요. 동네 후배랑 차담 나누신다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대답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다소 근원적이면서 모순된 질문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이 험난한 가시밭길, 문학의 길, 시의 길로 접어드셨는지, 또한 내밀한 문학적 원체험이 있으실 것 같은데, 오래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바다 사랑 백일장을 갔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바다를 바라봤던 것 같아요. 제가 목포에서 나고 자랐는데 막막하면서도 거대한 바다 앞에서 처음 인간으로서의 미미함, 원인을 알 수 없는 결핍 등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막연했던 허무함과 결핍이 문학을 하게 한 것 같고요. 그때부터 일기장에 시 비슷한 것들을 끄적이게 되었어요. 지금도 힘들면 그 바다로 달려갑니다.
□ 정숙자: 그러셨군요. 저는 한글을 깨우치면서부터 곧바로 동화책을 읽었어요. 정말 재미가 있더라고요. 같은 내용인데도 몇 번을 읽어도 재미가 있었거든요. 이미 여러 번 연보 같은 코너에서 공개했는데요, 어릴 때 마마를 앓는 도중 고열에 시달리다가 청력에 손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듣기보다 ‘읽기’에 맛이 들었던 듯해요. 책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시적 원체험이란 열 살 무렵이었는데요, 먼 산 너머의 초저녁별을 집 앞 토담에서 혼자 바라봤어요. ‘사람들은 이제 자려고 하는데, 별은 이제 부스스······. 일어나는구나’ 아마 그게 최초의 ‘상상’이었던 것 같아요. 듣고 보고 읽었던 것 외에 ‘자기만의 눈’을 처음 경험했던 것이죠. 황홀했어요. 누구한테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당시엔 뭐가 뭔지도 몰랐지만요.
■ 김효은: 아, 그 황홀감에 결국 중독되셨군요. 저는 죽고 싶은 순간, 혹은 힘들고 지칠 때면, 무작정 바다로 가요. 십대 때는 교회 지하기도실로 갔었고요. 문학을 전공하기 전에는 종교에 심취해서 목회자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힘들면 시집 몇 권 챙겨서 바다로 갑니다. 이왕이면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곳으로요. 선생님께서는 인생의 매 순간, 특히 외롭고 힘들 때에 어떻게 그 시간들을 극복해내시고 견뎌내시는지 인생의 후배로서 삶을,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견딤’과 ‘겪음’은 선생님 시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이자 화두이잖아요. 선생님만의 견딤의 자세 혹은 노하우를 듣고 싶습니다.
□ 정숙자: 김효은 시인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어느 나라의 공주님 같으신데! 저는 죽고 싶은 순간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기차 통학을 했는데 달리는 기차의 난간, 맨 아래 발판에 내려가 만경강 깊숙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고, 30대 전후에는 실제로 두 번이나 삶과의 결별을 시도하기도 했고……, 견딤에는 별 방법이 없었어요. 그냥 갑갑한 채로 멈추어 있다가, 정말 딱 맞닥뜨리면 평소에 연구해 두었던 죽음의 방법을 실현코자 했습니다. 늘 죽음의 방법들을 연구했는데, 저세상에서 저를 수용치 않았던 까닭은 ‘두 아이’의 운명을 어쩌려고 그래? 꾸짖거나 달래려는 손길이 닿았던 듯해요, 유일한 위안의 문이 있었다면 동서고금의 책을 읽는 거였습니다. 일단 가성비(價性比)가 좋았고요(ㅎㅎ). 어쨌거나 저쨌거나 책을 읽으면 희미하게나마 뇌에 기쁨이 들어왔어요(ㅎㅎ).
■ 김효은: 아, 맞아요. 문학이 제일 가성비가 좋은 도피처이자 구원이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 그렇다면 제일 처음 만난 작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 닮고 싶은 시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고한 시인 중에 한 분, 또 지금 현재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시인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지금도 기억나는데요, 목포정명여자중학교에 다녔는데요. 당시 국어 선생님이셨던 김현선 선생님께서 김춘수의 「꽃」을 첫 수업에서 낭송해주셨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필사해서 코팅까지 했던, 바야흐로 문학소녀의 길로 접어들었던 기억이 나요. 서정주의 「푸르른 날」도 읊어주셨는데, 그래서 그 시집들을 구하려고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내 헌책방과 대형서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시와의 만남은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만, 그래도 어느 날 시가 가슴으로 와서 콕 하고 박히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요. 선생님의 시와의 첫 경험, 추억담을 듣고 싶습니다.
□ 정숙자: 제일 처음 만난 작가는 단연 소파 방정환 선생입니다. 번안 동화집이지만 제 생애에 그보다 더 감명 깊었던 책은 떠오르지 않는군요. 오죽하면 예순을 넘긴 나이에 그 책을 다시 구해 읽었다니까요. 시에의 매혹은 이리여자중학교 1학년 때, 으쓱하며 즐긴 건 중 3학년 때였어요. 이현수 선생님이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제 시를 칭찬해주시고, 그래서인지 예뻐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따뜻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다시는 들어볼 수 없는 말, 우리 반 아이들이 그랬었죠 “우리 반에서 정숙자가 제일 예쁘다”(ㅎㅎ).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가 윈도우 사진 찍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흑흑······,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그런 찰나刹那가 저를 기죽지 않게 도왔을 거예요. 마치 전생을 보는 듯하군요. 아 참, 문학소녀의 길에서 제 감성을 흔든 분은 서정주 시인, 의식을 깨운 분은 유치환 시인이었습니다. “아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지금 읽어도 그때의 정서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날개깃 소리가 들립니다. 좋아하는 현존 시인은(?) 좀 더 찾아봐야겠어요. 이분은 이래서 좋고, 저분은 저래서 좋으니······, 이런 경우가 결정장애 증후군일까요?(ㅋㅋ)
■ 김효은: 지금도 이목구비가 서구적이시고 미모가 반짝이세요. 사진관에서 모델 제의가 들어올 정도였으면 와우 인기도 많으셨겠어요. 쫓아다니는 남학생 얘기도 나중에 사석에서 들려주세요.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요, 선생님 시에는 철학자들, 문인들이 언급, 호명이 많이 되잖아요. 시집 제목도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로 지으셨는데, 문학 외에 인문학과 고전에도 많이 심취하셨죠. 철학을 대학원에서 공부하시기도 하셨구요. 인문학 독서에서 시적 영감을 많이 받으시는지, 시적 소재나 발상은 그 외에도 주로 어디에서 얻고, 시작은 어떻게 하시는지, 퇴고는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 정숙자: 위고의 『레미제라블Ⅱ』에서 꼬제트를 표현한 대목이 있어요. “빈궁이야말로 서글픈 인간 식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열다섯 살에도 열두 살로밖에 안 보이는가 하면, 열여섯 살에는 벌써 스무 살로도 보인다. 오늘은 소녀인가 하면 내일은 벌써 부인이다. 마치 일생을 빨리 마치기 위해 인생을 건너뛰는 것과도 같다.”(빅또르 위고 『레미제라블Ⅱ』 이휘영 정기수 방곤 역, 正音社. 1974/ 228쪽). 5~60년 전의 농촌은 몇몇 부농을 빼고는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어요. 철학이란 어떤 고통 속에서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의 분야일 텐데, 저 역시 소녀 시절이 없었던 듯합니다. 아예 어른으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에요. 까르르 친구들과 뒤엉켜 놀았다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무엇을 원한다거나······, 아예 그랬던 기억이 없어요. 점차 책을 읽다가 철학 서적을 접하고부터는 거기에 재미가 쏠렸죠. 빡빡하고, 두툼하고, 깊은 매력! 자연스레 대학원은 철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시적 소재나 발상 또한 독자적 발견이나 인식에서 출발하고, 퇴고는 문장에 집중합니다. ‘글은 문장으로 시작해서 문장으로 끝난다. 문인이 문장을 얻었으면 다 얻은 것이다’라는 주관에는 변함이 없고요. 저의 문학적 좌우명은 “시는 정확하기가 마치 수학과 같다. 시인은 꿈꾸지 않는다. 그는 계산한다(쟝 꼭또)”입니다. 엠비규이티(ambiguity)나 알레고리(allegory) 차원에서는 특히 그렇죠.
■ 김효은: ‘수학’이라는 단어는 제가 듣기만 해도 열등감이 솟구치는데요. (^^) 앞으로는 저도 치밀하게 정밀하게 계산된 시를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참, 선생님 프로필을 보면 김제에서 출생하셨다고 나오는데, 선생님의 시에는 고향, 전원적인 풍경, 특정한 시간들, 일상적 풍경보다는 초월적인 공간으로서의 자연, 시간 또한 무화無化되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고 자란 곳의 이야기, 고향 얘기를 조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 정숙자: 네 맞습니다. 저는 전북 김제 즉 호남평야 너른 들의 한 초가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시각적 풍경이나 정경을 직설적으로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 자연에 숨겨진 정신이랄까? 앞서 말씀하신 철학적 사유 안에서의 지향성을 담고 싶었고 그것이 제가 해야 할 바라고 느꼈지요. 아무러하든 그게 저의 타고난 성향이었을 테죠. ‘나비’를 쓰더라도 그 외양보다는 애벌레의 고통에서부터 번데기 과정의 어둠, 날개를 얻은 다음에도 포식자로서가 아니라 식물들의 가루받이를 돕다가 홀연히 생을 마감하는······, 소나무나 강물 바람 구름 등을 도회인보다 다가서서 볼 수 있었던 점도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김효은: 요즘 덕후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예를 들면, 선생님께서 예전에 공식 석상에서 사담처럼 하신 얘기 기억이 나는데요. 특히 ‘나비’를 좋아하셔서 나비 문양의 원피스를 할부로 구매하셨다고 단상에서 웃으면서 얘기하신 적이 있으신데, 그 원피스 정말 예쁘더라구요. 나비 말고도 좋아하시는 거 아무거나요. 탐닉하거나 수집하거나 애정 하는 사물이나 사람, 또는 대상, 취미 활동 같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연필, 만년필, 고양이, 커피, 바다를 좋아합니다. 덕후, 마니아라고 보기에는 열정이나 체력, 지식, 재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다방면에 ‘얕은’ 덕후랍니다. (웃음)
□ 정숙자: 네네 나비! 방금도 말씀드린 나비 이야기군요. 젊을 때는 옷보다 나비를 샀어요. 유행 따라 옷 사 입을 형편은 안 되니까 나비를 택했던 거죠. 그래서 아직도 서랍 속에는 나비가 몇 마리 쉬고 있습니다. 저의 시 중에 ”나비는 날아다니는 별이다. 먼 데 별이야 정체를 알지 못한다”(「그러므로 강물도」)라고 한 게 있거든요. 제가 그만큼 ‘나비홀릭(butterfry holic)’이고요. ‘나비홀릭’이라는 제목의 시도 제8시집 『뿌리 깊은 달』 안에 담겼습니다. 취미로는 커피 내리기인데요, 2011년도에 ‘커피스쿨’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한 마담이기도 합니다(ㅎㅎ). 밥은 아무렇게 먹어도 커피만큼은 즉시 그라인딩-핸드드립-제 기호에 맞추어 내리지요. 시간에 쫓겨 느긋이 즐기지는 못하지만, 우아한 잔은 몇 세트 가지고 있고요.
■ 김효은: 와, 선생님께서 내려주시는 커피 꼭 한번 맛보고 싶네요. 은은한 향이 전해오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이번 시집 『공검&굴원』(미네르바, 2022) 얘기를 해 볼까 해요. 저는 정말 인상적으로 감명 깊게 읽었어요. 평론가이기 전에 시인으로서 공부도 많이 되었고요. 그래서 애정을 가지고 얼마 전 『시와사람』 여름호에 선생님 시집에 관한 리뷰에도 썼지만요. 특히 표제작에 해당되는 「공검」 이라는 시에는 선생님의 시론이 집약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어라는 칼, 시의 칼을 지니면서 살아가는, 그러면서 시인 그 자신이 또한 ‘공검’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잖아요. 그것은 곧 대상과 본질을 보는 눈이기도 하고요. 사유이면서 사유를 베고 허공 중에 드러내는 하나의 틈, 균열이 시에 섬광처럼 기입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 봤어요. “너머의 너머”를 보는 눈, 허공까지 꿰뚫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구름 속 허구를 솎는” 시의 칼날을 생각했습니다.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처럼 언뜻언뜻 드러나는 존재의 광휘, 일종의 진리 같은 것이 시에 기입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채는 것은 또한 독자의 몫이고 독자만의 눈이 필요한 것이겠고요. 선생님 시에는 완만함과 날카로움, 비밀과 노출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래 벼린 칼, 저는 그것을 진검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인의 눈, 혀, 검을 녹슬지 않게 벼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양날의 검을 감싸 쥔 시인의 손은 또 얼마나 많은 고통으로 단단해지는 것일까요.
□ 정숙자: 우리의, 그러니까 시인의 몸은 지상의 것을 먹고, 지상의 것을 입을 뿐 아니라 지상의 것을 보고 듣고 감촉하는 존재잖아요? 그렇지만 우리의, 시인의 의식은 우주를 유영하고 횡단하며 탐사하는 영혼으로서의 실존이기 때문에 ‘허를 찌르는 칼’은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도구일 것입니다. 그런데 “허를 찌르는 칼”은 설명일 뿐이에요. 그래서 그 설명의 주인 격인 명사를 만든 것이죠. 예를 들자면 ‘A가 B에게 공검을 날렸다’ 꼴로 쓸 수 있게요. 언어 경제에서 한 음절을 줄이는 일도 문인이 담당해야 할 한몫이 아닐까요?
■ 김효은: 맞습니다 선생님. 언어 범람의 시대에 시인들에게도 언어 경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 아니라도 수많은 작품을 쓰셨는데, 특별히 더 아끼고 애정하는, 혹은 산통을 많이 겪으셨다거나 아니면 오히려 일필휘지로 썼는데, 이 시는 참 유독 마음에 든다는 그런 작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정숙자: 넵, 초기에는 거의 다 일필휘지였습니다(ㅎㅎ). 그야말로 넘쳐흐르는 내용을 죽 받아적으며 ‘됐다’ 하고 믿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부끄럽게도 그 당시 ‘천재’라는 소리를 더러 들었어요(후훗). 첫 시집의 첫 시 「당신은 어떤 바람으로」, 7시집에 실린 「무인도」 등이 그런 부류입니다. 그 후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절차切磋와 탁마琢磨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달」이나 「액체계단」 「공검」 「북극형 인간」 등을 들 수 있지만, 무작위로 막 떠오르는 대로 짚은 거예요, 제 자식은 사실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 김효은: 아 그리고 독자로서 어떻게 보면 사소한 질문인데, 「공검」과 「굴원」은 각각 다른 작품인데 제목에서 “&”앰퍼샌드(ampersand)로 이어 붙이신 이유나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공검과 굴원은 한자어인데 그 사이에 쓰인 기호가 독자로서는 시각적으로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 정숙자: 제가요, 현실에서는 소심한 편인데 글을 대할 때는 달라져요. 글은 누구와의 관계가 아니라 혼자 가꾸는 세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앰퍼샌드(ampersand)는 블로그에서 약력 베낄 때 흔히 쓰는 기호예요.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정이 생긴 거죠. ‘이번엔 이 친구에게 어엿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받아든 순간 앰퍼샌드와 제가 동시에 행복했습니다. 책이 마음에 쏙 들게끔 예쁘기도 했고요. 앰퍼샌드는 두 편의 시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역할도 하니까 제 몫을 충실히 하는 찐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강점으로 여긴 건 새롭다는 거죠. 남들이 다 그렇게 했다면 저는 그렇게 아니-했겠죠?(ㅎㅎ)
■ 김효은: 그렇군요. 아쉽게도 2022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요. 올 한 해 동안의 소회와 더불어 질문이 조금 이르긴 하지만 2023년도에 계획하시는 바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정숙자: 새해에 대해서는 구상해보지 않았어요. 지금 당장 생각으로는 자식들의 건강과 좀 안정된 생활, 저 개인적으로는 무사無事를 바랄 뿐이고요, 나라의 안위는 각별한 걱정입니다. 문학에 관해서라면 따로 뭔가를 꿈꾸거나 계획하지 않을 계획이에요. 지금처럼 산책하며 책 읽고, 밤이면 편지 쓰고 블로그도 성실히 운영하고······, 앗 이게 가장 큰 꿈인가요? 쇼펜하우어의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것은, 평온 고통 없는 생활임을 알아야 한다.”(『쇼펜하우어의 행복론』 , 집문당, 2014. 256쪽)라고 정의한 걸 보면 말입니다.
■ 김효은: 오늘의 좌담이야말로 평온하고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김삿갓 문학상 수상하신 것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다음에 뜨거운 차 한 잔 같이 꼭 마셔요. 늘 건강, 건필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정말 감사드립니다.
□ 정숙자: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잖아요? 김효은 시인이 저를 불러주셔서 제가 오늘 꽃이 되었습니다. 뜨거운 차 한 잔은 언제든 꼭 제가 따라드릴게요. 계속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늘 건강하세요, 추신) 예쁜 모습 더 예뻐지시길 바라면서······,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몇 번이고 되살려 “高맙습니다”.
■ 김효은: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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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시인광장』 2022-11월(163)호 <시인탐방/ 김효은 편집위원의 e-메일 특집 대담>에서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뿌리 깊은 달』『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공검 & 굴원』등, 산문집『밝은음자리표』『행복음자리표』, 동국문학상 · 질마재문학상 · 들소리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 수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 김효은/ 전남 목포 출생, 200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등단, 2010년 계간『시에』 평론 부문 등단.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저서『아리아드네의 비평』『비익조의 시학』, 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웹진 『시인광장』 & 계간『시로 여는 세상』 & 『시와 산문』 편집위원. 경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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