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의 마음
이승희
창밖으로 물고기 한 마리 스윽 지나간다
어디 가?
복도 끝으로
여름이 온다는 말이 좋았다
여름이 와서 나를 데려갈 거라는 말이 좋았다
끝이 끝을 바라볼 때 복도는 완성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완성되고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해서 완성된다
복도와 복도가 나란히 걷거나
간신히 비켜갈 때
아이들은 창문에 붙어서
물풀처럼 느리게 흔들리는 여름을 기다리고
제 그림자를 똑똑 분지르거나
가는 다리로 서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물가로만 걷는 습성처럼
뭘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서
쏟아진 우유처럼
울고 싶은 마음들만 자라고
상처와 불행처럼 가까운 게 또 있을까
뭘 해도 다치는 마음처럼
밤이 오고
큰 배 한 척이
복도로 미끄러지듯 들어와 어디론가 흘러가곤 했다
-전문,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22-6월호)
▣ Little Magazine시가마 선정 좋은 시_배성숙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을 기다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정말 그곳에선 울고 싶은 마음들만 자꾸 자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 뭘 해도 다치는 마음도. 그런데도, 늦은 하굣길,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조심조심 걸어 문 끝에 서서, 낡은 운동화를 신던, 마음이 가난했던 한 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던 복도. 훤한 얼굴에 청량한 여름 공기를 담고 "잘 가." 인사하던 복도의 다정한 마음. 그 덕분에 나는, 그때 그 복도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던 그 큰 배를 무사히 타고 여기까지 흘러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p.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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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배성숙/ <시가마>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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