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정리
주경림
버스 정류장 앞, 옷가게 유리창에
'폐업정리'
크게 써 붙였다
버스 기다리는 시간에
마네킹의 세련되고 아슬아슬한 옷맵시를 바라보며
눈요기하기가 즐거웠는데
옷가지가 다 팔려 휑한데도 문 닫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았더니
'폐업정리' 밑에 잔글씨가 보인다
'마네킹도 팝니다'
들여다보는 내 얼굴이 겹쳐 비쳤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슬퍼졌다
마치 내 영혼을 헐값에 내놓은 것 같아
-전문 (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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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 제2집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에서/ 2022. 5. 9. <지혜> 펴냄
* 주경림/ 서울 출생, 1992년『자유문학』 시 당선, 시집『풀꽃우주』『뻐꾸기창』외 2권, 시선집『무너짐 혹은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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