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라는 우주엔 찰나가 산다
이미란(1962-2022, 60세)
당신이 내 첫 번째 생의 줄거리를 읽어가는 동안
찰나의 우주 정거장을 여행하고 돌아온 두 번째 생이
당신이 서 있는 무대 아래 일찍이 당도해 있다
모든 생은 윤회한다는 말을 전부 다 믿지는 않지만
발화하는 생의 배꼽에는 우주의 탯줄이 닿아있다
찰나의 손잡이를 순진무구하게 지켜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몰의 연대기를 따라가면
종결어미의 명령조로 심판하던 당신의 지팡이가 있다
찰나와 찰나 사이에 우주의 바깥을 여행하고 온 생을
고즈넉한 등불에 매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원의 터널 속을 통과의례의 기침으로 지나가는
바람의 페이지가 접어놓은 수많은 풍경이 보인다
그러니 이 질긴 윤회의 동아줄을 끊을 수 있도록
살았던 모든 잠의 기억과 달콤한 세계를 잊고
찰나와 영혼으로 매달린 수많은 생의 그네를
귀밑머리 잠의 허공을 밀어 올리듯 가뿐하게
-전문 (p. 198-199)
* 2022년 4월 7일 타계한 이미란 시인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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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emPeople시인들』 2022-여름(창간)호 <신작시> 에서
* 故 이미란/ 1962년 강원 양구 출생, 1997년『학산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준비된 말도 없이 나는 떠났다』『내 남자의 사랑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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