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꽃잎 세기
문덕수(1928-2020, 92세)
마을을 덮은 코스모스 덤불
아무거나 한 송이 골라 꽃잎을 열심히 세어본들
나비처럼 머무를 수야
대추나무 밑둥을 감고
한창 뿌득뿌득 기어오르고 있는 나팔꽃
푸른 것은 나팔주둥이라고 생각하면서
한잎 두잎 세잎 네잎 다섯 여섯 세어보지만
실은 한 송이일 뿐이다
돌담을 돌자 앞장선 나비는 오간 데 없고
순하고 야들야들한 연보라 무궁화꽃
그 한 송이의 여섯 개 꽃잎을 확인한들
내 어쩌랴 어쩌랴
해바라기는 서른 네 개의 황금 꽃잎을 둥글게 박고
들국화는 서른 아홉 개로 쪼개진 보랏빛을 빽빽이 둘렀거늘
내 어찌 머무를 수야
-전문-
▶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숭고와 해체 (발췌) _정신재/ 시인 · 문학평론가
문덕수는 "코스모스" "나팔꽃" "무궁화꽃" "해바라기" 등 여러 꽃을 건너 다니는 "나비"를 통하여 어느 하나의 꽃에 연연하지 않는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언어가 가지는 자의성, 곧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사물의 본질이 아닌 그 일부를 가지고 전체라고 주장하는 고착된 편견을 해체하기 위한 방법이다. "코스모스"를 보아도 "코스모스 덤불"만 볼 수도 있고, "꽃잎" 수만 세어 볼 수도 있다. 이는 뿌리와 가지와 잎이 위계을 가지고 계층적 질서를 이루는 방식을 거부하는 리좀(Rhizome)으로 사물의 다양성을 확인하여 그 본질에 다가서는 방식이다. 곧 하나의 텍스트에 고착된 관념을 거부하고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사물이 가진 다양성을 통하여 그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시인은 "코스모스에 고착하지 않고 다른 식물들에 접근함으로써 "코스모스"에 고착된 시선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리좀의 방식은 개인이 가진 인간미를 활용하여 존재와 사물의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해체라 할 만하다.
시인은 주체보다는 사물의 본성에 더 치중한다. 그에게 남은 과제는 이제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와 주체와 사물간의 관게이다. 전통 서정시에서는 비유나 알레고리 등의 전통적 표현 기법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조물주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창조하여 놓았지만, 세계에 대한 완벽한 이해란 신이 아닌 이상 어렵다. 실재 진리라고 가정된 세계 도 절대자가 아닌 이상 온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시인은 사물의 본성이나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그것이 리좀으로 주체와 사물, 이미지와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p. 시 313-314 / 론 31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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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5월(639)호 <이달의 평론> 에서
* 정신재/ 시인, 문학평론가, 1983년 『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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