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지하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새롭다.
잠은 블랙홀,
푸르른 신새벽에
나 홀로
초신성超新星으로,
쌔하얀 별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밤의
어지러운 꿈은
그러매 무너지며 창조되는
커다란 혼돈,
바로
시.
거기
흰 그늘이 서려
밤이 다 끝나갈 무렵
어두운 내 마음속에 문득
태어나 반짝이는
한 줄의
시
-전문-
▶ 외로움과 묵시론적 예언/ - 시집 『새벽강』을 중심으로(발췌) _홍용희/ 문학평론가
"한 줄의/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생물학적 과정이 드러나 있다. 시간적 배경은 잠에서 깨어나 "쌔아얀 별로 다시금 태어나"는 신새벽 무렵, 즉 "밤이 다 끝나"고 새로운 낮이 출발하기 시작하는 전환의 극점이다. 자정을 기점으로 음陰의 기운 속에서부터 면면히 신장해 오던 양陽의 기운이 표면으로 돌연 외화되는 마디절인 것이다. 이러한 음양의 '두 날'이 교차하는 시각에 탄생하는 시란 "어지러운 꿈"의 무너짐, 즉 커다란 혼돈으로부터의 생성을 가리킨다. 이것은, "어두운 내 마음속에 문득/ 태어나 반짝이는" 충일한 빛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국면을 정리하면, "한 줄의/ 시"는 "잠, 꿈, 혼돈, 밤, 어둠"의 계열체의 불랙홀이 폭발하면서 생성되는 "초신성超新星"의 눈부심과 같은 것이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한 줄의 시"란 카오스적인 어둠의 혼돈으로부터 탄생한 빛의 질서이다. 이때, 생성의 주체는 감각화 되지 않은 혼돈이다. 이러한 김지하 시 창작의 혼돈으로부터 질서의 국면을 미학적으로 규명하면 "흰 그늘"에 상응한다.
"흰 그늘"의 시학이란 무엇인가? "흰 그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늘"이 "흰"으로 몸바꿈을 하는 역설적인 균형 상태이다. "그늘"이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처럼, 판소리의 용어로서 신산고초의 오랜 견인이나 피나는 독공에서 배어나오는 보이지 않는 소리의 기운으로서, 이를테면 한恨에 가까운 형질이다. 한편, '흰'이란 그늘을 견인, 창조, 비판, 추동하면서 생성하는 밝은 빛을 가리킨다. 즉 그늘의 어둠이 어둠을 통해 생성시키는 충일한 생명의 빛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신명神明에 가까운 형질이다. 이렇게 보면 "흰 그늘"의 시학은 일단, '한의 신명', '신명의 한'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때, '흰 그늘'의 생성 주체는 가시적인 '흰'보다 비가시적인 '그늘'이다. 위의 시편에서 읽을 수 있는 시 창작방법의 비경 역시 "커다란 혼돈"에 강조점이 있다. 시적 생성의 주체가 감각적으로 드러난, '있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숨은 차원의 '없음'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사』 2006년 9-10월호에서 옮김)/ (p. 시 136-137 / 론 137-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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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6월(390)호 <김지하 시인이 추천하는 김지하론> 에서
* 홍용희/ 문학평론가,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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