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타인능해* 소나무/ 이혜선

검지 정숙자 2022. 7. 27. 00:46

 

    타인능혜* 소나무

 

    이혜선

 

 

  6.25 동란이 조금 숙어지자 옥열리 사람들은 두 달여 피난길에서 이고지고 안고업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무근절 20여 호, 안터골 30여 호 모두 불타서 연기만 모락모락, 후퇴하는 국군의 초토작전에 집도 옷도 가재도구 모두 잿더미, 아기를 풀밭에 뉘어놓고 불탄 자리 재를 쓸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모두 나와 집터를 닦았다

 

  앞산과 절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밤낮없이 툭툭 잘려나갔다

  아버지는 짐짓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우리 산의 소나무 모두 동네 사람들 기둥 되고 서까래 되었다

  집 없는 이들에게 타인능해 쌀보다 타인능해 소나무가 더 급한,

  따스한 둥지 되었다

  찬바람 얇은 옷깃 파고드는 겨울 초입에,

     -전문 (p. 78)

 

   * 낙안군수 류이주가 운조루에,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뒤주를 설치하여 '他人能解'라고 써놓고 누구나 열어서 가져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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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유 제2집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에서/ 2022. 5. 9. <지혜> 펴냄

   * 이혜선/ 1981년『시문학』추천, 시집『흘린 술이 반이다』『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외 다수, 저서『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