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능혜* 소나무
이혜선
6.25 동란이 조금 숙어지자 옥열리 사람들은 두 달여 피난길에서 이고지고 안고업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무근절 20여 호, 안터골 30여 호 모두 불타서 연기만 모락모락, 후퇴하는 국군의 초토작전에 집도 옷도 가재도구 모두 잿더미, 아기를 풀밭에 뉘어놓고 불탄 자리 재를 쓸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모두 나와 집터를 닦았다
앞산과 절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밤낮없이 툭툭 잘려나갔다
아버지는 짐짓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우리 산의 소나무 모두 동네 사람들 기둥 되고 서까래 되었다
집 없는 이들에게 타인능해 쌀보다 타인능해 소나무가 더 급한,
따스한 둥지 되었다
찬바람 얇은 옷깃 파고드는 겨울 초입에,
-전문 (p. 78)
* 낙안군수 류이주가 운조루에,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뒤주를 설치하여 '他人能解'라고 써놓고 누구나 열어서 가져가게 했다
---------------------
* 유유 제2집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에서/ 2022. 5. 9. <지혜> 펴냄
* 이혜선/ 1981년『시문학』추천, 시집『흘린 술이 반이다』『운문호일雲門好日』『새소리 택배』『神 한 마리』외 다수, 저서『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 산책』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정애_시.가.마가 선정한 좋은 시/ 패러디에 기대어 잠들다 : 이화은 (0) | 2022.08.24 |
---|---|
폐업정리/ 주경림 (2) | 2022.07.29 |
낙타에게 미안해/ 이섬 (2) | 2022.07.26 |
가문비나무의 노래/ 이보숙 (2) | 2022.07.25 |
양남 주상절리/ 박분필 (2) | 202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