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당하다
김권곤
달려드는 오토바이 굉음에 부딪쳤다
찰나였다
경찰차 구급차가 달려와
응급실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멀리서 부르는 것 같은
귀에 닿을 듯 흩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의사들은 알고 있을까
우주 어느 별을 다녀왔다는 것을
그 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한 개라도
지상으로 가져오면 천기누설이라며
문서를 지우듯 내 머릿속 기억을 지워버렸을까?
깨끗하게 지워야
출입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는 나라
내 머릿속 기억장치는
이십여 분이 지워진 채
복구할 수 없는 공란으로 남아있었다.
-전문-
▶ 연민의식으로 조각한 살맛이 나는 세상/ - 김권곤 시세계(발췌) _이택화/ 시인 · 소설가 · 문학평론가
「포맷당하다」의 시적 화자는 '찰나' '달려드는 오토바이'에 치인 후 '구급차'에 실려와 '응급실 수술대 위에 올려'졌다. 그는 '이십 여 분'만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소리에 깨아났는데,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복구할 수 없는 공란으로 남아있'는 '이십여 분'을 '포맷당'했다고 생각한다. 포맷(Format)은 컴퓨터 저장장치인 하드 디스크와 플로피 디스크에 자료를 저장할 수 있도록 저장장치를 초기화하는 것이다. 저장장치를 포맷하면 이전에 저장된 내용은 모두 삭제된다. 시적 화자는 '이십여 분'의 기억이 '포맷'으로 삭제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김권곤 시인은 교통사고를 당해 단기적 기억을 상실한 화자를 불쌍하고 가련한 상황에 가두지 않는다. 시인은 사라진 기억을 '우주 어느 별을 다녀'온 것이라는 상상으로 채워 아픔을 지우고 황홀을 일으켜 세운다. 독자는 '보고 들은 것들/ 나뭇잎 한 개라도/ 지상으로 가져오면 천기누설'이 되기에 '깨끗하게 지워'진 별의 세계를 상상하며 교통사고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줄겁고 신나는 별나라 모험가가 된다. (p. 시 18-19 / 론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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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시학』 2022-여름(41)호 <책 속의 작은 시집> 에서
* 김권곤/ 전남 고흥 출생, 2016년『국보문학』 신인상 수상
* 이택화/ 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집 6권, 소설집 2권, 수필집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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